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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심씨 Oct 29. 2024

어떤 키보드가 제일 좋아요?

키보드 스위치, 그 취향의 문제

보통의 사용자라면 PC 한 대에는 키보드가 하나만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키보드는 PC 살 때 번들로 오는 제품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도 하거니와, 키보드를 세 네개 연결해놓는다고 해봐야 손이 제한되어있으므로 한 개만 있는 것이 정상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키보드가 어림잡아 20개 이상은 되는 것 같다. 막 쓰는 키보드, 들고 다니는 키보드, 사무실에서 쓰는 키보드, 신나게 타이핑할 때 쓰는 키보드 등등 다양한 키보드들을 수시로 돌려가면서 사용하는 편이다. 그런 정도의 키보드 애호가 이다보니, 주변에서 키보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입문자들이 자주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떤 기계식 키보드가 제일 좋아요? 추천해주실만한 것이 있어요?"


그럴 때 나는 마음이 정말로 어렵다. 스위치는 온전히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기계식 키보드 스위치는 독일의 체리사의 MX 스위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독일 체리사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기계식 키보드와 스위치 제조 외길을 걸어가고 있는 기업이다. 저렴한 멤브레인 키보드가 등장하여서 키보드 시장을 잠식하였다가, 다시 기계식 키보드 붐이 불고 있는 최근까지 꾸준히 기계씩 키보드 시장을 지키고 있는 거의 유일한 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기계식 키보드 시장은 체리사의 독점특허 종료를 기점으로 나뉘게 된다. 특허 만료 이전의 기계식 키보드 시장은 체리 스위치를 쓸 수 밖에 없었기에 굉장히 고가의 제품이면서도 매니아들만 사용하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특허가 만료되면서 중국의 다양한 회사들에서 체리 스위치와 동일한 규격의 카피 스위치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 덕에 저렴한 보급형 제품들이 늘어나고, 많은 대중들이 기계식 키보드를 접하는 계기가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독점하고 있던 스위치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오히려 체리의 키보드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위치를 추천했다가 낭패를 봤던 경험은 나의 키보드 라이프 내내 꾸준히 있어왔다. 


처음 접했을 때 정숙한 키감과 부드러운 느낌이 정말 좋아서 지인에게 추천한 '저소음 적축' 스위치를 추천했던 적이 있었다. 나의 인생 키보드라면서 호들감을 떨며 스위치를 추천하였지만, 몇 번 타이핑 해보고는 먹먹함이 싫다고 하면서 거절당했다.


또 한 번은 35g의 스위치가 손에 무리를 주지 않아서 이렇게 가벼운 키보드를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지인에게 추천을 하였지만, '너무 가벼워서 오히려 오타가 많이 난다'는 평을 들었을 때도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하우징, 보강판, 배열 보다도 가장 키보드 사용감에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이 키보드 스위치 이기에 기계식 키보드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타건샵에 가셔서 직접 하나씩 타이핑을 해보고 구매를 하시는 것을 추천한다'라고 하지만 결국 이런 대답이 돌아올 때마다 속이 쓰리다.


'아니 그래도 써보고 이 정도면 정말 좋다 하는 키보드가 있을 거잖아요.'


아휴.






원조인 체리사의 키보드를 기준으로 설명을 하자면 키보드는 크게 청축, 적축, 갈축으로 나뉜다. 어렵지 않다. 색깔이 청색이고, 적색이고 갈색이라서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지금은 중국에서 정말 말도 안되게 많은 스위치들을 만들어내고 있어서 바다소금이니 우뚜게황이니 춘추전국시대보다 많은 스위치들이 입문자들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크게 클릭(청축), 텍타일(갈축), 리니어(적축)으로 나뉜다는 것만 기억하자. (대부분의 스위치에 셋 중에 하나가 붙어있을 것이다.)


클릭축은 피씨방에서 쓰는 것처럼 짤깍짤깍 소리가 나는 축, 텍타일은 클릭축처럼 걸리는 느낌은 나되 소리는 조금 적은 축, 리니어는 걸리는 느낌도 없는 축으로 기억하면 가장 빠르고 간편하다. 







같은 갈축이어도 제조사에 따라서 느낌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하고, 심지어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같은 제조사에서 제조된 동일한 축이어도 차이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기에 키보드 스위치는 정말 개인의 취향의 영역이다.


나 역시도 입문기때는 청축을 쓰다가, 청축의 소음에 내가 오히려 머리가 아플 정도여서 저소음 적축을 쓰다가, 지금은 적축과 갈축의 경계에서 이 키보드 저 키보드를 오가면서 쓰고 있다. 쓰면서 변하기도 하는 취향을 내가 어떻게 완벽하게 추천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정말 좋다 하는 스위치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나는 교과서처럼 이 정도까지만 추천을 하고 싶다.


"혼자 사는 집에서 게임하실 용도로 사실 거라면 청축을 사시고, 적당한 구분감은 느끼면서 재밌게 키보드를 쓰고 싶으시면 갈축을 사시고, 손에 무리없이 타이핑을 하고 싶으시면 적축을, 사무실에서 쓰실 거라면 저소음 붙은 걸로 사세요." 라고.




* 내 마음 속 원픽은 체리MX 스위치 중 저소음 적축 스위치이다. 그것도 레오폴의 키보드에 결착되어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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