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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심씨 Oct 08. 2024

내 인생 첫 키보드

멤브레인 키보드

DT-35

98년 생산 이후 26년동안 꾸준히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멤브레인 키보드의 전설


삼성전기 생산의 멤브레인 키보드로 현재는 지피전자에서 생산 중

생산 업체가 삼성전기이냐, 지피전자냐에 따라 구디티(삼성전기)/신디티(지피전자)로 나뉜다.


구디티(옛날 모델)은 멤브레인 키보드의 전설적인 제품으로 꼽히며

이런 명성을 등에 업고 출시한 신디티(최근 모델)들은 

LED탑재모델, 숫자키가 없는 텐키리스 모델 등 다양한 파생모델들이 존재한다.




컴퓨터를 처음 접한 건 30여년 전쯤의 일이다. 초등학생이던 나에게 컴퓨터 업계에서 일하시던 외삼촌께서 중고 486 컴퓨터를 어느날 주고 가신 것이 역사의 시작이었다. (당시 인텔의 CPU는 지금의 i5같은 모델명이 아니라, 486이라는 모델명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뛰어와 MS-Dos 디스켓을 넣어야만 부팅이 되었던 그 컴퓨터로 고인돌 게임과 한컴 타자연습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나의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방문했던 강변 테크노마트에서 세진컴퓨터의 586 펜티엄 컴퓨터 '진돗개 1호'를 덜컥 사주셨던 날의 한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이 586 컴퓨터라는 것이 뭐가 좋은 건지는 당시에 몰랐지만 300만원짜리 최신식 586 컴퓨터를 주문하고 나오는 길에 어리둥절한 내 뒤에서 외삼촌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고,


"이야, 300만원이면 우리 조심이 티코 한 대 산 거네!"


그 말을 들었던 어린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맙소사. 컴퓨터가 자동차 값이라고?! 우리집 부자였던 거야?!'




컴퓨터를 사주셨던 아버지께서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추측해보건데 아마도 아버지는 아들이 IT분야 천재가 되어 주커버그처럼 되기를 바라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프로그래밍을 접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실리콘벨리에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스타크래프트를 접해버렸으니...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던 것은 필연에 가까웠다.


그렇게 수많은 게임들을 하며 컴퓨터의 성능은 갈 수록 좋아져서 586 컴퓨터는 곧 다른 컴퓨터로 대체되었고, 볼이 들어가있는 마우스는 레이저 마우스로 대체되었지만, 이상하게도 키보드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번들로 제공되는 새로운 키보드들이 손에 안 맞았기도 했고, 이미 익숙한 키감이 바뀌는 것이 싫었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멤브레인 키보드는 실리콘(또는 고무)가 멤브레인이라는 회로위에서 눌리면서 신호가 전달되어 키가 입력되는 방식이다. 키보드는 크게 손에 닿는 키캡 > 실리콘 > 회로로 구성되어있으며 키캡의 높이, 실리콘의 재질에 따라 타건감의 차이가 크게 난다.


다만 멤브레인 키보드는 회로의 설계구조상 키를 동시에 눌렀을 때 일부 키가 입력이 안 되는 현상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게임용 키보드보다는 사무용 키보드로 추천을 하고 싶다. (사무용으로 사용해도 엄청나게 빠르게 타이핑을 하다보면 키씹힘 현상이 나타날 때가 있다.)




첫 컴퓨터를 접하고 3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의 방에는 그때의 번들 키보드 DT-35가 남아있다. 이제는 기계식 키보드에 익숙해졌다는 이유로, 변색이 되었다는 이유로, PS2 단자가 노트북에는 없다는 이유로 뒷전이 되어있는 키보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기분의 전환이 필요할 때면 한번씩 소환이 되어 추억의 그 느낌을 전달해주는 키보드다.


한때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이 대부분 사용하면서 '진리의 키보드'로 불렸지만시절이 지나 더 좋은 키보드들이 무수히 쏟아지는 지금에도 묵묵하게 만들어지고, 판매가 되며 자기만의 자리를 지키는 그가 참 고맙다.




좋은 멤브레인 키보드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두꺼운 멤브레인 키보드라면 중간 이상의 퍼포먼스는 보여준다. 그만큼 내부에 좋은 재질의 실리콘(러버돔)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으며, 키를 눌렀을 때의 깊이감이 있어 타이핑하는 맛이 어느 정도 있다. 


사무용으로 사용할 제품이라면 로지텍사의 K120키보드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키스킨이 기본으로 들어있기도 하여서 조용하게 사무용으로 쓰기에는 최고의 키보드라고 생각한다. ESC가 오른쪽으로 살짝 들어가있는 부분이 독특하긴 하지만, 쓰다보면 금방 익숙해진다.


아마도 나의 DT35는 30년쯤 후에 박물관에 기증될 것 같다. (사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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