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1가지

by 용맹한 바닷가재

인간관계론의 바이블인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이런 글이 있다.


철학자들은 수천 년에 걸쳐 인간관계의 법칙을 연구해 왔는데, 그 가운데서 오직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발견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2천5백 년 전 페르시아에서 조로아스터는 그것을 그의 추종자들에게 가르쳤고, 그의 추종자들은 배화교도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24세기 전 중국에서 공자는 그것을 강의했다. 도교의 시조인 노자는 도덕경을 써서 이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그리스도 탄생 5백 년 전에 석가모니는 갠지스 강기슭에서 이것을 설교했다. 그보다 1천 년 전에 힌두교의 성서는 이것을 가르쳤다. 예수는 20세기 전에 유대의 바위산 위에서 이것을 가르쳤다. 예수는 이것을 한 가지 사상으로 요약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일 것이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면 남을 대접하라."


살면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인간관계다. 잘 지내다가도 틀어지고, 결국 혼자가 되기도 한다. 뭐가 문제지?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면 더 이상 상처 받고 싶지 않아 더 잘 챙겨주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만 노력하는 것 같고 억울해지고도 한다.


늘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한다. 그렇다고 서운하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내가 부담스러워 멀어질까 봐 말이다. 답답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친구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부터 새로 해야 한다. 친구를 왜 사귀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관계를 맺는 것인지 서로 도움을 주고 성장을 위해서인지 말이다. 혼밥이 싫고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면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 왜냐하면 누구나 타인의 액세서리가 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태도를 갖고 친구를 대해야 할까? 친구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준다는 생각을 갖고 대하는 것이다. 힘들 때 위로해 주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영혼의 메이트로서 말이다. 내가 이만큼 줬으니 너도 나에게 그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는 관계는 비즈니스적 관계지 건강한 인간관계가 될 수 없다. 내가 주는 이유가 받기 위해서가 되면 안 된다. 그저 주고 싶어서 주는 게 되어야 한다. 주고 잊어버리는 사랑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친구에게 준 관심과 호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느냐는 상대에게 달려있다. 이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즉, 상대의 과제라고 심층심리학의 거장 알프레드 아들러가 말했다. 그러니 친구가 먼저 연락하지 않고 내가 준 것만큼 돌아오지 않는다고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말이다.


어머니께서 자식을 위해 사랑과 정성으로 밥을 해주시고 “너는 왜 엄마한테 밥을 안 해주냐?”라고 불평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자식은 어머니의 사랑을 어떤 식으로든 보답한다. 진정한 친구도 마찬가지다. 보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내가 사랑을 주는 행위를 통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준만큼 오지 않는다고 집착하지 말자. 내가 성장한 만큼 그런 친구가 나에게 올 것이다.

https://youtu.be/vT6tU9lmK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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