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고 있냐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식상하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혹은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정도. 아무래도 야심한 시각일수록 생산성보단 무의미한 쪽을 택하게 된다. 낮에 쌓인 불만을 보상받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준비물은 간단하다. 따뜻한 이불과 핸드폰, 이 두 가지면 충분하니.
근래 들어, 내 몸뚱이 중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건 단언컨대 손과 눈일 거다. 핸드폰 아래 네 손가락을 받침대로 삼아 엄지손가락을 상하좌우로 놀리고, 이에 맞춰 빠르게 전환하는 화면을 쫓아 눈동자도 덩달아 바빠진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욱여넣을수록 만족도는 최상이다. 귀여운 강아지 5초, 유행하는 음식 리뷰 5초 등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영상을 끝까지 보는 법이 없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던가.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가 버렸다.
많이 쓰면 쓸수록 발달한다던데, 내 손과 눈은 퇴보에 한창이다. 눈은 퀭하고, 손가락은 저릿저릿. 잠들기 직전에 핸드폰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악영향을 끼친다는 학설에 손수 힘을 실어준다.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빚이 빚을 떠 안 듯, 그날에 대한 불만에 허무맹랑하게 막을 내려버린 하루에 대한 죄책감까지 더해진다. 게다가 졸려도 자지 못하는 지독한 불면증이 이자로 따라붙는다. 나도 안다. 보상은커녕 고작 스스로에게 하는 화풀이 정도뿐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 거북함에 놀아나는 나는, 이름하여 '핸드폰 중독'이다.
부산에 다녀왔다. 21살 이후로 9년 만이다. 돈은 없고 마음만 앞선 청춘이었던지라 시간을 살 여력이 없었다. 도착 시간을 앞당기기 위한 비용은 시간당 만 원 정도. KTX로 2시간이면 갈 거리를 무궁화호로 족히 5시간을 달려갔던 패기 가득한 시절이다. 지금도 그리 넉넉하진 않지만, 최소한 밥벌이만큼은 하는 어른이 됐으니 일말의 고민 없이 KTX 표를 끊었다. 주머니 사정뿐만 아니라 여행을 계획하는 것 또한 한결 나아졌다. 숙소 근처에만 어슬렁거렸던 지난날과는 달리, 조금 더 멀리 그리고 보다 더 다양한 목적을 갖고 이리저리 쏘다닐 작정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보수동 책방 골목 근처에 있는 한 카페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 사귀는 게 어려운 현실에서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났으니 운이 참 좋다. 캐나다에서 살다가 이제 막 미국으로 이사를 간, 내 기준 최장 거리에 살고 있는 미리내님이 바로 그 친구다.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낄 때 급속도로 친해진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있어 글쓰기와 그림이 그 공통분모다. 실제로 서로를 마주한 적은 없었지만, 글과 그림으로 맺은 인연은 꽤 두터웠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나누며, 소위 내적 친밀감을 쌓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녀가 잠시 한국에 들어온다니. 안 만날 이유가 전혀 없다.
부산 중구 보수동 1가 아테네학당, 우리의 접선 장소다. 커피 한 잔에 어색함이 금방 사그라든다. 문자 너머로는 알 수 없던 그녀의 표정과 말투를 차차 알아가며, 처음 보는 얼굴과 처음 듣는 목소리는 곧 편안함과 익숙함 사이의 무엇이 됐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입체감이 한층 더해질 무렵 헤어질 시간이 닥쳐왔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미리내님은 또 다른 반가운 얼굴들을 부지런히 만나러 다녀야 하고, 나는 이곳에서의 남은 여행을 계속해야 하니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마치 풍선 같은 시간이었다. 한껏 부푼 기대감에 못 이겨 순식간에 빵하고 터져버리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한 그런 시간. 만나서 반갑다며 서로에게 건넨 작은 선물과,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나눈 포옹의 온기만큼은 부산의 가을을 선명하게 증명해 줄 것만 같다.
부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무엇일까. 그곳으로부터 약 400km 이상 떨어져 살아온 이방인에겐 아무래도 이름만큼은 익숙한 해운대가 아닐까 싶다. 너무 뻔한 건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위 명소라는 곳에 한 번쯤은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결국 해운대로 향했다.
예상했던 것만큼 관광객으로 북적이진 않았다. 비수기인 데다가, 이웃 나라에 상륙한 태풍의 영향으로 잿빛 구름이 잔뜩 낀 탓도 있을 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잠시나마 날씨가 개었다는 것, 그리고 때마침 해운대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탁 트인 바다와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석양, 닿는 대로 움푹 파이는 곱디고운 모래밭 위 사람들이 자유로이 어우러진다. 누군가는 바다와 마주 앉아 일기 비슷한 걸 쓰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갖가지 전문 장비를 동원하면서까지 완벽한 타인들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과연 나라는 사람은 이 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 여행에서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낮이 비교적 짧다는 거다. 칠흑 같은 파도에 태양도 함께 휩쓸려 간다. 행인의 일기장을 덮어버리고, 무명의 관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해운대의 밤이다. 여행의 마지막 날, 특히 자정에 가까워질수록 아쉬움을 담아 어리광을 부리게 된다. 집에 돌아가기 싫다고, 하루만 더 묵고 싶다고.
'주간 리포트, 지난주보다 2시간 덜 사용하셨습니다.'
카드 명세서가 날아오듯 어김없이 한 주 동안의 핸드폰 사용량이 도착했다. 이날은 보통의 문구와는 달랐다. 그래봤자 '더'에 리을 받침이 추가된 것뿐이지만, 그것이 주는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심증에 이어 물증까지, 어리광을 부렸던 명백한 증거를 핸드폰에서 찾는다. 매일 핸드폰을 손에 달고 살던 내가, 무려 두 시간씩이나 담을 쌓고 있었다니. 그만큼 부산에서의 하루하루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즐거웠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핸드폰의 존재가 흐려졌던, 사라진 두 시간 동안 무엇을 담았는지 생각해 본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던 친구의 얼굴과 무해하게 찰랑대는 파도.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들의 몸짓까지. 그간 부산에서 보고 들은 모든 순간이 좋은 꿈 재료가 되었는지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단잠에 빠져버렸다.
아주 좋은 꿈을 꿨다. 덕분인지 눈은 개운하고, 손가락은 야무지다. 손바닥 안의 작은 세계로부터 나와 지금, 바로 이 시공간 속에서 진정한 위안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