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몇 번의 선택을 내리는지 궁금해졌다. 맛, 영양, 선호도를 고려한 식단과 그날의 기온에 맞는 두께와 재질의 옷을 결정해야 한다. 거기에 어울리는 신발까지 빼먹을 수 없다. 운동화냐 플랫슈즈냐,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이 외의 자질구레한 선택을 다 합하면 족히 몇백 개는 될 거다.
유독 결정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 생각 이상으로 그 수가 많을지도 모른다. 짬뽕과 짜장면 사이를 저울질하다가 결국 정확히 반씩 담은, 이름하여 '짬짜면'의 탄생이 바로 그 증거다. 하나를 콕 집어 선택하지 못해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애매한 중립성 뒤에 숨는 사람들이다. 보통 그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빨리 고르라며 한 소리를 듣고 만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답답한 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
*
"남편을 고르는 게 아니야. 아무거나 골라"
답답함이 섞인 목소리가 멍한 정신을 흔들어 깨웠다. 그렇다. 그때의 나는 목소리의 주인이 말한 대로 남편을 고르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에 심각해 있었다. 중학생이 남편을 고른다니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나는 그저 티셔츠 한 장을 고르면 됐다. 티셔츠 한 장. 어려울 것 하나 없는 일이다. 그저 눈길을 사로잡는 걸 골라 손가락으로 툭 가리키면 그만이니까. 무엇을 고르든 그 선택 하나로 미래의 남편이 결정되진 않았을 거다.
옷을 산다고 하면 동대문을 떠올리는 게 자연스러웠던 때다. 특히 밀레오레나 에이피엠. 값싸고 다양한 옷이 모여있는 쇼핑의 메카와도 같은 곳이었다.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갈 때쯤이면 하나의 관광 코스인 양 자연스레 친구들과 그곳을 찾았다. 관광의 목표는 단 한 가지. 마음에 쏙 드는 옷을 발견할 것.
어릴 때부터 매사에 느린 편이다. 뭘 먹을지 결정하기까지 한세월이 걸리고, 밥을 먹을 때도 제일 늦게 수저를 내려놓기 일쑤다. 옷을 살 때도 예외는 아니다. 친구들의 손에 쇼핑백이 하나둘씩 늘어날 동안 내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빈손의 장점이라고는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는 것과 가려운 부위를 얼마든지 긁을 수 있다는 것 정도. 오히려 단점이 많았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이런 감정은 멀쩡한 사람도 조급하게 만들어 버린다. 손끝에 아려오는 뻘쭘함을 감추고 싶어서 뭐가 됐든 무작정 끌어안고 싶어진다. 이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충동구매로 이어지는 거다.
사실 충동구매도 쉽지 않다. 그전에 무엇에 충동을 느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먼저다. 중학생의 하루는 짧다. 아무리 다 컸다고 자부할지라도, 부모님이 걱정하시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의무가 있는 나이다. 더 이상 고민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들린 마지막 가게. 이곳에서 선택의 폭을 좁히기로 했다. 이걸 사느냐, 저걸 사느냐. 후보는 딱 두 가지다.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속수무책으로 뒤틀려버린다. 체감상 10분은 현실에선 한 시간 정도다. 이곳에 얼마나 서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로 얼추 짐작할 수는 있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구나, 하고. 남편을 고르는 게 아니니 아무거나 고르라는 아주머니의 말이 단단하게 굳어있던 내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겨우 손을 뻗고 입을 열었다.
"저걸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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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것과 저것 중에 '저것'을 골랐다. 초록색 바탕에 하얀색 영문자가 프린팅된 티셔츠다. 물론 지금은 없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의류 수거함으로 들어갔던 걸로 기억한다. 옷감이 해진 탓도 있었지만, 단순 변심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것'에 해당하는 쪽을 골랐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의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전혀 다른 것에 흥미가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까지 미치지 못한 옛 추억일 뿐이다. 그것들의 영향력은 딱 거기까지였던 거다.
마음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1초에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먹음직스러운 메뉴들이 나열된 키오스크 앞에서 제약 없이 손을 이리저리 흔드는 것만큼이나 자유롭다. 그 유동성이 얼마나 거센지, 고집과 아집만으로 제자리에 고정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다. 어쩌면 그런 불확신의 유전자가 온몸에 새겨져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결정을 앞두고 한참을 서성이다가, 기껏 내린 결심을 번복하고, 또 최대한 선택을 미룬다. 그러다 결국 어물쩍 끝을 본다. 그 결과에 만족스러워했다가 후회하고, 후회하다가 만족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선택의 몫일 거다. 가히 우리답다.
일생일대의 선택을 내리는 순간이 과연 몇이나 될지 생각해 본다. 10년 전에도, 그제도, 오늘도 아니었다. 일생일대라 여겼던 오늘은 수없이 많았지만, 여전히 오지 않는 중이다. 여태 초록색 티셔츠만 잔뜩 골랐을 뿐이다.
어쩌면 선택의 연속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일생일대의 순간은 먼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주 먼 미래. 그날을 점치기엔 지금 이 순간도 미지수다. 짧은 순간에 너무 많은 걸 고려하다 보니 머리가 펑- 하고 터져버린 거다.
인생은 남편을 고르는 게 아니다. 순간의 선택은 순간에 맡기면 되는 거다. 이 세상은 정답과 오답이 없는, 답이 없는 엉망진창의 불규칙한 세계니까.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들이 '일생일대의 나'를 만들어 가리라 믿는다. 인생은 답이 아닌 방향을 찾는 여정의 연속이니까. 그저 마음에 드는 티셔츠를 고르듯,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