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순간의 연속
시작한 것만으로도 빛나기에 충분하다
본가에서 오랜만에
앨범을 구경하다가
유치원 때 그린
그림을 발견했는데,
새삼 못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렸던 당시에는
어떤 그림보다도
내 그림이 가장 예뻐 보였지만,
어딜 가나 한두 명쯤 꼭 있는
재능인들 사이에서
현실을 깨달은 후에
그림을 다시 봐보니
여느 유치원생이 그린
평범한 그림 중
하나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는 어떤 분야에
딱히 특출나지 않아도
스스로가 빛나 보이는
순간이 자주 있었다.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할 때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금세 몰입했고,
검은띠가 아닌
햇병아리 같은
노란띠를 매고서
태권도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참 자랑스러웠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한 살씩 먹어갈수록
무슨 일을 해보기도 전에
쉽게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잡다한 지식은 늘어났지만,
세상에 모르는 것 투성이었던
유치원생 때보다 할 수 있는 건
오히려 줄어든 것 같다.
그동안 터득해온 정보에 따르면
앞날에 대한 설렘보다는
불확실성에 대한 데이터가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를 찾아내며
불운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최적의 타이밍이
오기만을 기다리게 됐다.
어릴 때는 여러 핑계를
댈 수 있을 만큼
아는 것이 많이 없었기에
첫 시작이 쉬웠던 것 같다.
소꿉놀이에서
의사가 되는 날이면
어디선가 주워들은
몇 개의 단어를 조합하며
어설프게나마 침묵을 깼고,
태권도복을 처음 입은 날에는
평소와 다른 옷차림이 주는 설렘에
제대로 된 동작을 배우기도 전에
손이 가는 대로 주먹을 뻗었다.
잘 해야 된다는 압박감 속에서
우물쭈물 머뭇거리기보다는,
엉터리 의사와
물렁한 주먹을 가진
흰띠 초심자가 되기를
선택했던 것 같다.
비록 첫 주먹에서는
솜방망이로 치는듯한
약한 소리가 났지만,
질끈 묶은 허리띠의 색깔이
노랑, 초록, 파랑, 빨강의
다양한 색을 거칠수록
꽤나 묵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약한 펀치를 시작으로
강한 한방이 나오듯,
어떤 형태의 시작이든
시작한 것만으로도
빛나기에 충분한 것 같다.
크레파스가 싸구려든
비싸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눈앞에 있는
하얀 도화지에 집중하며
선을 이어갔던 그날처럼,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작은 발자취를 시작으로
빛나는 순간의 연속을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