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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연예인

만능 엔터네이너 부모님

by 가담



내가 9살 때쯤에
나보다 한두 살 어린 남매를
하루 종일 돌본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여동생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더니
그 아이의 오빠도
곧장 따라 울기 시작했다.


그때는 내 스스로의 감정도
컨트롤하기 어려웠던 나이인지라,
당황해하며 소심하게
울지 말라고 토닥여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덩달아 울어버릴 것 같아서,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던 최고의 묘기인
태권도에서 배운 풍차 돌리기를 하며
온 거실을 헤집고 다녔다.


다행히도 남매는 금방 울음을 멈췄고,
박장대소까지는 아니었지만
눈물 몇 방울 머금은
남매의 웃음소리 덕분에
묘한 뿌듯함과 자신감이 올라와서
더 힘차게 풍차를 돌렸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 동물원을 다녀왔는데,
동물 소리보다는
어린아이들과 부모님들의
감정 섞인 소리로 가득했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모든 힘을 다해 우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침착하게 이유를 묻거나
조금은 단호하게 타이르는 목소리
그리고 스스럼없이 부르는
어른들의 노랫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저쪽에서는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라는 멜로디를,
이쪽에서는 나비에게
이리 날아오라며 흥얼거린다.


노래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면,
아이들이 청중 매너를 지키듯
유모차 안에서나
엄마 아빠의 손을 꼬옥 붙잡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부모님들의 단독 콘서트가 한창이다.


혼자였다면 부끄러움에
길거리에서 노래 부를 일이 없을 텐데,
부모님들은 아이들 앞에 서면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든 무대로 만들어 버린다.


싸이의 연예인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자신과 닮은 꼬마 아이의
환한 웃음을 보기 위해
코미디부터 액션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어쩌면 일상 곳곳에서 펼쳐지는
부모님의 공연은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다 한들
끝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본가에 왔다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엄마 아빠표 손맛을 한껏 뽐내시거나,
다 같이 조용히 밥을 먹다가
재밌는 일화가 있다며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시고,
때로는 좋은 곳을 가자며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어주시며,
자주는 아니지만
자취방에 잘 도착했냐는
안부 전화를 핑계 삼아
수줍게 사랑고백을 하신다.


2시간을 걸려 본가에 가는 게
조금 귀찮다가도
매번 기다리려 지는 이유는,
평범한 하루를 다채롭게 만들어버리는
만능 엔터테이너 부모님 덕분인 것 같다.


나만의 연예인인
엄마와 아빠가
평생 웃으시길 바라며,
환한 웃음으로 보답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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