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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한 데로 모일 때

낯선 이들의 하루

by 가담


고등학생 때
어둑한 방 안에서
스탠드 조명을 켜고
공부를 하다 보면,
책에 대한 내용이 아닌
조금은 엉뚱한 데에서
궁금증이 생기곤 했다.


'지금 이 순간에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있을까'라는,
낯선 사람들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했다.


사실 고등학생 때뿐만 아니라
여전히 타인의 하루가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강남역을 걸을 때나
평소에는 한적한 도로인데
유난히 차들이 빽빽이 있는 날이면,
진지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3초 정도 생각해 보게 된다.


토요일 오후에 말랑이와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 보면
저층 집 창문을 통해
다양한 소리가 들리곤 한다.


대화하는듯한 웅얼거림,
스포츠 중계 소리,
찬송가 부르는 소리,
피아노 두드리는 소리 등


집집마다 흘러나오는
일상 조각을 통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구나',
'피아노 연습을 하는구나'와 같이
여러 형태의 토요일을 유추해 본다.


성인 두 명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찰 정도 좁은 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는데,
말랑이보다 한 발자국 앞서 간
자원봉사자 조끼를 입고 계신
아주머니들의 발걸음에 맞춰
뒤따라 걸었다.


나름 배려랍시고
최대한 천천히 걸으며
소소하게나마 보폭을 벌려봤지만,
아주머니의 바지 밑단 냄새를 맡겠다며
목줄을 잡아끄는 말랑이 덕분에
그나마 있던 간격이 허물어져버렸다.


다리 끝에서 느껴지는
하얀 털뭉치를 바라보시며
음식이 있긴 한지만
우리 집 웅이 거 밖에 없다는
아주머니의 농담 섞인 말과 함께,
나무 정자를 중심으로 한
넓적한 갈림길이 나오면서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조금만 더 하면 잘 하겠는데?"


갈림길에서 헤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들리는
조금은 익숙해진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쌩쌩이를 연습하고 있는
남자아이가 보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
줄과 바닥의 마찰 소리,
발에 걸려 아쉬워하는
깊은 한숨 소리.


말랑이도 낯선 아이의
하루가 궁금한지
묵직이 서서
뚫어져라 쳐다본다.


다른 이들의 하루는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웅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며
행복해하실 아주머니와
쌩쌩이를 성공하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을
저 아이의 하루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저마다의 토요일을 보내다가
시선이 한 데로 모이며 알게 된
낯선 이들의 하루는,
나와 말랑이의
여느 날과 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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