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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by 가담



초반에 등장하는 새해 전야제
장면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매년 1월이 오면 본능적으로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를 찾게 된다.
본격적으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에 앞서
복습 차원으로 다시 한번 보고 싶달까.


주인공 팀의 가문은 조금 특별하다.
옷장같이 캄캄한 공간에 들어가
주먹을 살포시 쥐고 눈을 감으면
과거의 한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사실 나도 팀만큼이나
시간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다.
팀보다 약간 더 월등한 게 있다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


머리를 감다가도 혹은 밥을 먹다가도,
우글거리는 감정이 불쑥 솟구치는 동시에
그리 달갑지 않은 여행이 시작된다.


'머리 자르지 말걸',
'저축 일찍 시작할걸',
'그때 이렇게 얘기할걸'


행동이나 결정에 대한 후회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순간이라면
가까운 과거부터 아득히 먼 과거까지
어디든 가능하다.


팀보다 한 단계 앞선 구석이 하나 더 있다.
팀은 과거 여행만 가능하지만
나는 미래로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


"벌써 월요일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사실 일요일 오후일 때가 대부분이다.
멀쩡하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을 무시한 채
다음날의 일과를 걱정하기에 바쁘다.
그러다가 얼렁뚱땅 진짜 월요일을 맞이한다.
월요일을 두 번이나
맞이한듯한 억울함은 덤이다.


영화 속 시간 여행자들이
흔히들 호소하는 울렁거림같이,
당시의 상황과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거나
앞날에 대한 걱정 어린 마음에 짓눌릴 때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기분이
덩달아 엉망이 되곤 한다.


할걸, 말걸, 만약에.
꾸욱 누르면 같은 말을
의무적으로 반복하는 곰 인형처럼,
돌아갈 수 없는 혹은
아직 오지도 않은 시공간에 갇혀
의미 없는 문장을 중얼거리는 느낌이다.


사진첩을 구경하다 보면
'이때 참 좋았지' 싶은 순간들이 많다.
허리까지 주렁주렁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걸리적거린다고 불평했을 때도
그리고 업무 걱정에 불안에 떨며
보낸 작년 여름휴가 때도,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빛나 보인다.


회상과 불안에 섞인 말이 아닌
즐겁다, 행복하다, 슬프다 등 다양한 말로
그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바빴을
멋진 순간이었다는 걸 뒤늦게나마 깨닫는다.


그날의 온도와 바람의 세기,
함께 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당시에만 직관할 수 있던 세세한 찰나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더 멋졌을까.


올해의 목표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거다.
되도록이면 과거와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휩쓸려 가는지라
계획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쪼록 정신을 붙들어 매야 될 것 같다.


현재를 이탈할 낌새가 보일 때면
주인공 팀의 말을 밧줄 삼아 꽉 쥐고 있을 것.


'우린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를
항상 함께 시간 여행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시간 여행자 선배님의 조언을 따라
오늘도 오늘이라는 여행에 최선을 다하며
정성스러운 하루를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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