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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의 뒤편

by 가담



"나는 30만 원 정도 받았어"
"나는 60만 원 정도"


설 연휴 마지막 날,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의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들어 버렸다.


세뱃돈을 얼마 받았는지에 대해
서로 브리핑하는 시간인 듯한데,
나도 한때 꼭 거쳤던
절차였기에 잘 알고 있다.
이 대화가 오갈 때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는 것을.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은 다를 게 없지만,
소량의 봉투가 오간다는 이유만으로
추석보다는 설날을
한 꼬집 정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전북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돈 봉투를 슬쩍 꺼내 총 액수를 세어보며,
이번엔 친구들 사이에서 몇 위권 안에 들지
조심스레 예상해 보곤 했다.


몇 년 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설날에 세뱃돈 비슷한 걸 받았다.
세뱃돈은 아니고 복돈이라며
부모님이 봉투를 건네셨다.
빼어난 직장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엿이 돈을 벌고 있다 보니
받아도 되는 건가 싶다가도,
오랜만에 받은 용돈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들뜬 마음도 잠시.
가득 차려진 엄마의 밥상에
돈 봉투는 뒷전이 되어버린다.
얼마가 든지 모를 미지의 봉투를
가방 깊숙이 넣어둔 채
고소한 기름 냄새를 맡기에 바쁘다.
동태전에 김치전 그리고 동그랑땡까지.
이 많은 걸 도대체 언제 다 만드셨나 싶어진다.
거기에 노릇하게 구운 고기까지 합세해
접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식탁이 빼곡하다.


끊임없이 먹었으니
다음날은 운동을 하기로 했다.
엄마표 샐러드와 잡채를 챙겨
아빠와 언니랑 차에 올라타 목적지에 도착.
운동이라기보다는 게임에 가까웠지만,
다음날 온몸이 저릿했던 걸로 보아
나름대로 근육을 쓰긴 한 것 같다.
서로의 헛스윙을 보며 깔깔 웃다가도,
자세를 잡으며 진지하게 임하다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연휴 중간에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고,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루하루를 맛있는 음식과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반가운 얼굴과 나누는
여러 이야깃거리로 가득 채우다 보니
3박 4일의 여정이 짧게 느껴진다.


어느새 연휴의 끝자락이다.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날,
나보다 부모님이 더 분주하시다.
이거 가져가라, 저거 가져가라 하며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바람에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가방이 더 무겁다.
평소에 나누던 인사보다
몇 초는 더 길게 서로를 눈에 담으며,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끝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뗀다.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멀리서부터 건너온 짐들을
식탁에 우르르 쏟아냈다.
비타민에 사과에 햄에 그리고 돈 봉투.
드디어 봉투 속 금액을 확인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짤막한 편지와
오만 원짜리 세 장.


길에서 마주친 아이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돈이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두둑하다고 자부하며
승리의 미소를 지어본다.


어릴 적과는 다른 의미로 명졀이 좋아졌다.
진득하게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웃을 수 있으니.
그저 그런 시간이 참 좋다.


세뱃돈에 가려져있던 설날의 의미를
이제서야 깨닫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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