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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텀 Jul 10. 2023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노력

에디 엘펜바인의 이야기

투자자에게는 다양한 어려움과 고난이 있지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데 많은 투자자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경기침체와 금리 인상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매크로적 요소들부터 시작해서 어떤 기업이 고점을 돌파했다거나 하는 크고 작은 소식들까지, 투자자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은 너무나도 많으며 그로 인해 많은 투자자들이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러한 정보의 과부하로 인하여 머리가 복잡해지는 한편, 주식의 매매가 마우스 클릭 한 번, 터치 한 번이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뭔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불을 붙이는 요소입니다.



위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평균 주식 보유기간은 1975년 기준 5년에서 현재 기준 10개월 정도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알고리즘 기반 투자의 확대 및 기관투자자들의 거래가 주식 거래량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 그래프가 개인투자자의 보유기간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평균적인 주식 보유기간에 대한 대략적인 가늠을 가능케합니다. 2000년 이후로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을 반복하지만 큰 틀에서는 2019년을 제외하고는 1년을 채 넘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치평가의 대가로 불리는 아즈워스 다모다란 교수가 말했듯이 잦은 매매가 수익률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된 사실입니다. 또한 워렌 버핏, 찰리 멍거 등 많은 투자 대가들 역시 주식을 너무 빨리 팔아버리거나 성급히 사는것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투자자들, 특히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워렌 버핏, 찰리 멍거나 가이 스피어같은 투자 대가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주식은 장기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제는 식상하고 지루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투자자 중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극단을 보여주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투자자가 있습니다. 바로 이번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에디 엘펜바인(Eddy Elfenbein)입니다.


에디 엘펜바인은 약 5100만 달러, 한화로는 650억 원 정도로 상당히 작은 규모의 금액을 운용하는 투자자입니다. 에디의 투자는 일반적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극단에 있는 독특한 투자인데, 그는 매년 1월 1일 단 하루만 매매를 하며 그 이후는 일 년 내내 단 한 번의 매매도 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의 포트폴리오는 25개 종목으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1월 1일에 단 5개의 종목만을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고 새로운 5개의 종목을 편입시킵니다. 즉 에디는 1년에 단 한 번만 매매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산술적으로 평균 5년의 보유기간을 유지하는 것이 강요된 방식의 포트폴리오를 운용합니다.


에디의 '구매 리스트'는 그가 직접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공유돼있습니다. 매년 연말 즈음에 다음 해에 포트폴리오에 포함될 기업들을 공개하며 1월 1일에 매매를 진행합니다. 에디의 보유 종ㅁ고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 링크로 접속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 https://www.crossingwallstreet.com/ 이러한 극단적인 방식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투자자인 에디는 누적수익률로 S&P 500을 가볍게 따돌리는 성과를 보여줬습니다. 주목해야할 점은 S&P500은 세계 그 어느 지수보다도 큰 폭으로 상승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에디는 1년에 단 한 번 투자하는 방식으로 S&P500의 17년 누적 수익률 기준 100%의 초과수익률을 달성해냈습니다.


*에디의 2006년 부터의 누적 수익률과 S&P 500 과의 비교 - https://www.crossingwallstreet.com/buylist


물론 이러한 방식의 투자가 무조건 옳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에디의 성공은 오직 하나의 사례일 뿐이며 1년에 한 번 매매하는 투자가 절대적으로 초과수익을 달성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명제의 유의미한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에디의 성과와는 별개로 그의 투자 방식은 다양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년에 단 한 번 투자하는 것은 시장과 기업의 변화에 대한 면밀한 대응을 불가능하게하며 25개의 많지 않은 종목의 포트폴리오에서 겨우 5개만을 교체할 수 있는 점 역시 나쁜 기업을 걸러낼 수 있는 기회와 좋은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제한하는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17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유의미하게 초과 수익을 달성했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끼게 합니다.


에디는 그의 투자 성과가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기업을 선별하고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 편하게 투자할 수 있는 기업들에만 투자하는 것이 강요되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냄으로써 다른 투자자들에 비해 더욱 더 엄격한 과정을 통해 기업을 선별합니다. 이러한 선별 과정을 거쳐서 그의 리스트에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크게 받지 않으며 기업 내부적인 이슈도 크게 생기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굳이 지속적으로 매매할 이유가 없는 기업들만이 자연스럽게 남게됩니다. 이 독특한 방식으로 에디는 자신만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투자'를 완성해냈습니다.


저 역시 나름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에디의 놀라운 투자 방식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하지만, 저는 1년에 12번, 매월 말에만 매매를 진행합니다. 이 매매 역시 매도를 진행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며 대부분 매수만을 진행합니다. 이 방식은 매 월 월급이라는 현금흐름이 있는 저에게 1년에 한 번 매매하는 것 보다는 조금 더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의 1일부터 말일 전까지는 투자에 대한 공부와 기업 분석, 포트폴리오 점검을 진행하고 매매에 대한 의사결정을 미리 끝내둡니다. 그리고 매 달 말일에 매매를 진행하기 전까지 의사결정이 조급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는지, 충분한 근거와 분석을 바탕으로한 선택인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합니다.


평범한 투자자인 저 역시 많은 뉴스와 정보들에 노출이 되다보면 불안함으로 인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팔아버리고 싶을 때도 많으며 미래가 유망하다고 말하는 주식들을 매수하고 싶을 때 역시 많습니다. 매 달 말일에만 매매할 수 있다는 제약은 이러한 충동적인 선택을 효과적으로 막아줍니다. 물론 이런 방식은 대응의 유연함을 상실하게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긴 시계열을 가지고 투자하는 저에겐 과도한 유연함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투자 구루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꾸준히 뭔가를 해야만한다는 강박은 투자자들을 심리적으로 괴롭게할 뿐만 아니라 투자의 성과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늘 그렇듯이 투자에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시점을 가지고 투자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뭔가를 해야한다는 불안감 속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면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릅니다.


6/11/2023

Value Investor's Sanc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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