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기대받지 못하는 성장기업
한 기업의 밸류에이션이 낮게 형성되는데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미래의 성장성이 기대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엔비디아와 같이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기업들에게는 높은 밸류에이션의 주가가 형성되는 것과 반대로 앞으로의 성장이 불확실하며 기대가 떨어진다면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게 됩니다. 반도체 산업에 속한 많은 기업들 중 후자에 속하는 기업이 바로 퀄컴입니다.
퀄컴의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핸드폰과 같은 기기가 포함된 핸드셋이나 자동차 혹은 IoT 기기에 들어가는 칩을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올리는 QCT 사업과 다양한 특허들을 통해 라이센스 비용을 받는 QTL 사업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중 QCT 사업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QTL 사업은 비중은 낮지만 세전이익 마진 68%에 달하는 고마진 사업입니다. 퀄컴은 1985년에 설립된 이래로 핸드폰 칩셋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며 빠른 속도로 성장해온 기업입니다. 하지만 퀄컴의 미래는 더 이상 아름답지 못하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퀄컴은 반도체 산업이 평균 22의 PER을 부여받는것과는 동떨어진 12의 PER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반도체가 시클리컬 산업이기 때문에 경기 침체의 리스크가 커졌으며 성숙해진 핸드폰 시장의 성장성이 둔화되는 트렌드까지 합쳐져 퀄컴의 성장성에는 많은 의문 부호들이 따라붙습니다. 이러한 매크로 요소와는 별개로 기업의 두 사업 QCT와 QTL모두 성장성에 대한 공격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퀄컴의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QCT 사업이 마주하는 가장 큰 문제는 퀄컴의 가장 큰 고객사였던 애플의 독립 선언입니다. 애플은 퀄컴의 칩 대신 자체 칩 개발을 천명하였으며 퀄컴 역시 애플의 매출 비중이 점점 줄어들것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퀄컴과 애플은 현재에도 장기 계약을 통해 칩과 라이센스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 비중이 상당히 줄어들어 현재는 매출의 15% 정도가 애플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매출은 앞으로도 점점 줄어들어 애플의 계획대로라면 2025년에는 미미한 수준의 매출이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고마진 사업으로 퀄컴의 높은 수익성에 큰 기여를 하는 QTL 사업 역시 역사적으로 늘 공격을 당해왔습니다. 가장 큰 이슈가 되는 부분은 핸드폰의 총 가격을 기준으로 라이센스 비용이 책정된다는 것인데, 많은 핸드폰 제조 기업들은 이러한 비용 책정이 불합리하다는 소송을 제기해왔습니다. 이러한 소송들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진행 중이며 만일 퀄컴이 이러한 소송에서 패배할 경우 QTL 사업의 높은 마진율에 악영향을 끼칠 것은 자명합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한 퀄컴에 대한 낮은 밸류에이션은 나름 일리가 있어보입니다. 하지만 퀄컴이 역사적으로 낮은 PER으로 거래되고 있는 지금, 이러한 평가가 과연 합당한 평가인지 혹은 과도한 저평가인지를 점검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퀄컴의 두 사업 부문인 QCT와 QTL에 대해 분석하여 퀄컴의 성장성에 대한 재확인을 해보고자 합니다.
QCT
QCT 사업은 위에서 말했듯 주요 고객사의 이탈로 성장성의 둔화가 예견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애플의 이탈은 이미 매출 예상치에 반영이 돼있으며 퀄컴은 애플이 없는 미래를 오래 전부터 준비해올 수 있었습니다. QCT의 매출 중 핸드폰이 참여하는 비중은 77%로 아주 높지만 퀄컴은 상품의 다각화를 통해 자동차와 IoT기기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핸드폰의 매출 비중을 줄이면서 매출의 다각화를 꾀함과 동시에 성장성이 높은 시장으로의 진출을 동시에 이루고자하는 원대한 목표입니다.
- 자동차(automotive) 칩셋 사업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 함께 자동차에 대한 칩의 수요 역시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기차가 자동차 산업의 미래임이 분명해지면서 그만큼 자동차에 들어가는 칩이 늘어나고 이러한 칩을 생산하는 기업들 역시 직접적인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퀄컴은 2030년 기준 10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될 것으로 예측되는 자동차 칩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매출의 3%정도밖에 되지 않는 미약한 사업이지만 QCT 매출이 17% 떨어진 2023년 2분기에도 자동차 관련 매출은 20%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지난 1년간의 매출은 10억 달러 정도로 시장에 대한 확장성 역시 높은 상태입니다. 이 시장은 수요가 분명한만큼 높은 경쟁이 예상되지만 퀄컴은 이 분야에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며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퀄컴은 오토모티브 커넥티비티 칩셋에서 8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는 2030년 기준 160억 달 러 규모의 시장이 될 것으로 예측되며 퀄컴이 지금의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다면 2023년 2분기 QCT 전체 매출액의 두배에 달하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포텐셜이 있습니다. 이 분야가 전체 자동차 칩셋 사업의 예상 규모에서 단 16%를 차지하는 분야임을 생각하면 퀄컴의 성장성은 더욱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IoT 칩셋 사업
또한 현재 매출의 18%를 차지하는 IoT 칩셋 역시 퀄컴이 시장에 대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퀄컴은 2022년 기준 IoT 칩셋 마켓에서 40%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그 뒤 2위부터 5위의 점유율을 합친것과 비슷한 수준의 지배력입니다. IoT 칩셋 시장은 2030년 6930억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거대한 시장입니다. 퀄컴은 이 분야에서 이미 인정받는 기술력을 통해 다양한 IoT 기기에 칩셋을 제공하고 있으며 시장의 성장에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 핸드셋 사업
핸드셋 AP의 성장 둔화에 대한 염려 역시 일리가 있지만 퀄컴에게는 분명한 캐쉬 카우 사업입니다. 비록 핸드셋 시장 자체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성장세가 둔화되며 주요 고객의 이탈 역시 성장세에 악영향을 끼치겠지만 퀄컴이 일정 수준의 매출액 이상을 이 사업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것은 분명합니다. 퀄컴의 AP 칩은 미디아텍과 같은 주요 경쟁사들의 칩에 비해서 월등한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디어텍이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며 일시적으로 퀄컴을 해당 분야 점유율 1위에서 밀어냈음에도 불구하고 퀄컴이 매출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 역시 이 기술력에 있습니다. 핸드폰 시장의 성숙은 큰 틀에서는 악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경쟁사가 생기지 않을 이유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경쟁과 새로운 기업의 출현은 성장하는 산업에서 주로 발생하며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산업에서는 상대적으로 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장 규모의 성장이 둔화되며 퀄컴이 현재 점유율을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적정한 수준의 점유율만을 유지한다면 핸드셋 분야 매출 역시 충분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QTL
높은 마진율을 지닌 효자 사업인 라이센스 사업이 소송으로 인한 리스크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신경 쓰이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퀄컴은 이러한 소송을 오랜 기간동안 진행해왔으며 대부분의 건에서 승리해왔습니다. 퀄컴은 국제적으로 다양한 판례를 남기는데 성공했으며 이는 미래의 소송 방어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년간 퀄컴은 라이센스 비용을 핸드폰의 총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해왔으며 이 방식을 방어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따라서 소송으로 인한 리스크는 분명히 퀄컴의 지속적인 비용 소모를 초래하지만 퀄컴의 높은 마진의 사업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것으로 판단됩니다. 실제로 애플과 화웨이와의 소송에서도 결국 합의를 통해 라이센스 비용을 받을 것이라는 결론을 냈습니다.
퀄컴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한 특허권을 통해 3G에서는 독점에 가까운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으며 4G와 5G에서도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퀄컴은 멀티모드 스마트폰에 대해 3.25%의 로열티를 받으며 싱글 모드 5G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2.275%의 로열티를 받습니다. 5G 스마트폰에 관해서 110개가 넘는 계약을 이미 성사시킨 상황이며 이는 5G 스마트폰 주요 제조사의 전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퀄컴의 QTL 사업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빠른 기술의 발전이였습니다. 5G의 발전은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래하였고 3G에서의 지배력에 비하여 5G에 대해서는 여전히 위대하지만 상대적으로는 아쉬운 지배력을 보여주며 5G 이후의 영향력에 대한 의문문을 가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5G의 실질적 상용화에 대해서 대부분의 통신사들이 수익성을 문제로 백기를 들면서 퀄컴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시장을 점유하게 됐습니다. 5G의 상용화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될 예정이며 이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5G에서 그 누구보다 빠르게 포지셔닝을 한 퀄컴의 기대이익은 더 높아지게 됩니다.
밸류에이션
현재의 퀄컴에 대한 밸류에이션은 퀄컴이 앞으로 유의미한 이익성장을 이루어내지 못할것이라는데 전제를 둔 수준입니다. 물론 퀄컴의 2023년은 매출의 역성장이 예상되지만 핸드폰에 대한 수요 개선이 2023년 후반기 혹은 2024년 전반기에 이루어질것이라는 점과 성장하는 IoT와 자동차 칩셋 시장에 대한 강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전제에 대해 합리적인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퀄컴은 이 분야에서 오랜 기간동안 성공을 이루어냈으며 여전히 높은 수준의 재투자를 통해 시장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퀄컴은 매출의 약 25%를 R&D 비용으로 소비하며 끊임없이 재투자를 통한 성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용이 실제 매출로 이어질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지만 퀄컴은 역사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성공을 지속적으로 증명해왔습니다.
현재 시장은 다시는 퀄컴이 지금까지 이뤄내온 일을 반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퀄컴의 높은 기술력, 미래에 대한 확실한 목표와 실행력, 그리고 성장하는 산업에서의 훌륭한 포지셔닝을 바탕으로 생각해봤을 때, 퀄컴이 다시 지금까지 이뤄낸 눈부신 성과를 다시금 이뤄낼 수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높은 수준이라고 판단합니다.
Disclaimer: 이 글은 매수/매도 추천이 아니며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6/11/2023
Value Investor's Sanct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