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자의 정량화
해자라는 개념은 기업의 펀더멘털을 투자 의사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투자자에게 필수적으로 활용됩니다. 훌륭한 기업의 일부를 보유한다는 개념의 투자에는 투자하는 기업이 지금 이 순간 훌륭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훌륭한 기업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수 많은 기업들이 해자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듯이 현재 경쟁 우위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 역시 그 미래를 알 수는 없습니다. 투자는 전적으로 미래에 대한 예측이며 훌륭한 과거가 늘 훌륭한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자라는 개념의 중요성이 더욱 더 두드러집니다. 넓고 깊은 해자를 가진 기업은 경쟁자들을 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장기간 경쟁 우위를 지켜나가며 훌륭한 기업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해자에 대한 분석 및 판단은 대부분 정성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합니다. 크레딧 스위스의 해자에 대한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정성적 분석에 대해서 기나긴 체크리스트를 제공했는데, 그 중에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꼭 확인해야하는 것들을 아래 적었습니다.
- 포터의 다섯 가지 경쟁 요인 모델
- 생산비용의 증가를 구매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가
- 대체제가 있는가
- 교체비용이 높은가
- 구매자가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 진입 장벽
- 경쟁자가 얼마나 많이 새롭게 진입하거나 퇴장하는가
- 경쟁자가 새롭게 진입하기 위해 얼마나 큰 비용이 필요한가
- 산업에 진입하기 위해 특허나 라이센스 등이 필요한가
- 제품의 차별화가 가능한가
- 혁신
- 산업이 혁신에 위협을 받는가
- 새로운 혁신이 제품 향상에 영향을 주는가
- 브랜드
- 고객들이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가
- 브랜드가 고객이 내고자 하는 금액을 높일 수 있는가
- 고객들이 브랜드에 대한 감정적인 연결을 가지고 있는가
- 고객들이 브랜드의 이름으로 인해 제품을 신용하는가
위 내용에 더해 해자에 대한 수 많은 질 높은 내용이 담긴 크레딧 스위스의 리포트(출처: https://research-doc.credit-suisse.com/docView?language=ENG&format=PDF&sourceid=csplusresearchcp&document_id=1066439791&serialid=4uA2wHojCvFKzqWfwIyDvkSN1pkXRpb43LvyclLcJsk%3D&cspId=null)를 직접 읽어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 훌륭한 리스트에 더해 개인적으로 네트워크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평가를 체크리스트에 포함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풍부한 체크리스트를 전반적으로 검토하면서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면 그 기업이 해자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성적인 평가를 통해 해자에 대한 완전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저는 투자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모든 것이 정량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아즈워스 다모다란의 말에 공감합니다. 회사가 실제로 해자를 가지고 있다면, 이는 분명히 회사의 재무와 이익에 반영이 되어있어야만 합니다. 해자를 통해 경쟁 우위를 가지고 있다면, 단순히 정성적으로 좋은 모습이 아니라 정량적으로도 훌륭한 모습일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해자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성적인 개념에서 아무리 회사의 해자가 훌륭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실제 기업 운영의 숫자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이걸 정말 경쟁 우위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해자의 완벽한 정량화는 불가능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해자의 정량화에 대해서 제시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수치에 대해서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1. 재무 비율 - ROE, ROIC, ROCE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해자의 정량화는 여러가지 재무 비율을 확인함을 통해서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ROE, ROIC, ROCE는 모두 기업의 이익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만일 기업이 넓고 깊은 해자를 갖추고 있다면, 이 기업은 경쟁자에 비해 효율적으로 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계산 공식
Return on Equity (ROE) = Net Income / Shareholders' Equity
Return on Invested Capital (ROIC) = Net operating profit after tax / Invested Capital
Return on Capital Employed (ROCE) = Earnings before interst and tax / Captial Employed
이 공식들은 물론 더 디테일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ROE의 경우 분자에서 배당을 제외해서 배당 이후의 순이익을 사용한다거나, 분모를 기초와 기말의 평균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혹은 Du Pont ROE로 더욱 더 세분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보편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공식을 사용했습니다.
ROE는 기업이 자기자본 대비 얼마나 높은 이익을 올릴 수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ROIC는 투자한 자본 대비 이익률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ROCE의 경우 자기자본 뿐만 아니라 부채를 포함한 자본을 바탕으로 얼마나 높은 이익을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지표입니다.
위 세 지표는 상황에 따라서 알맞는 지표가 다르고 또 투자자들마다 선호하는 지표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결국 이익의 효율성을 정량화하고자하는 노력입니다. 기업이 가진 ROE, ROIC 혹은 ROCE가 경쟁기업보다 높다면, 이 기업이 현재 기준에서 해자를 가지고 있다는 판단에 대한 유의미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조엘 그린블라트의 경우 그의 마법 공식에서 ROCE와 ROIC가 섞인 방식의 EBIT/Invested Capital 공식으로 훌륭한 기업을 판별해내어 투자하는 방식으로 높은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테리 스미스 역시 ROCE를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활용하며 ROCE가 높은 기업은 장기적으로 높은 이익을 기록할 수 있는 기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기업이 경쟁사에 비해 높은 효율의 이익을 장기간 기록할 수 있다면, 훌륭한 투자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마진율
기업의 마진율 역시 해자의 정량화를 위한 간편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어떤 마진율을 사용하는가는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를테면 높은 총 매출 마진을 가진 기업이 미래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진행할 경우 영업이익 마진이나 순이익 마진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총 매출 마진이 낮은 기업이더라도 의도적으로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영업이익 마진이나 순이익 마진은 높아지게 됩니다. 혹은 일시적인 세금 혜택이나 영업과 상관없는 고정자산의 처분 등으로 이익을 얻는다면, 총 매출 마진과 영업이익 마진이 모두 낮아도 순이익 마진은 높은 경우 역시 가능합니다.
즉, 각 기업의 상황과 운영 방식에 따라서 어떠한 마진을 해자의 정량화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를 스스로의 분석을 통해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현실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총 매출 마진과 영업이익 마진입니다. 순이익 마진은 위에서 언급한 여러가지 일시적인 변화로 인해 수치가 변동될 수 있는 것에 비해 총 매출 마진의 경우 매출에서 원가를 뺀 비용으로 이 수치는 거짓말을 하기 어려우며 영업이익 마진 역시 영업에 관련된 이익과 비용만을 포함하기 때문에 기업의 사업 자체의 성과를 판단하기 위한 합리적인 수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계산 공식
총 매출 마진 = (Net sales - COGS)/Net Sales
영업이익 마진 = Opearting Profit/Net Sales
순이익 마진 = Net Income/Net Sales
마진율을 활용한 해자의 정량화는 위에서 소개한 ROE, ROIC와 ROCE에 비해서 조금 더 직관적입니다. 예를 들어 모두가 애플이 핸드폰 시장에서 가지는 브랜드 가치를 인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은 원가 대비 높은 가격을 고객에게 전가할 수 있으며, 고객들은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기 위해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합니다. 고객들이 가격에 대한 비교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애플의 브랜드라는 해자가 그만큼 넓고 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은 경쟁사들에 비해 훨씬 높은 마진율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재무제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투자하고 있는 로지텍 역시 또 다른 좋은 예입니다. 애플에 비해서 로지텍의 브랜드가 얼마나 강한지를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겠지만, 로지텍 역시 경쟁사들 대비 압도적인 마진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주변기기 산업에서 낮은 가격대의 수 많은 제품들이 있으며 소비자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저렴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결정권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로지텍의 브랜드 역시 소비자들이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만드는 해자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3. 로버스트 비율 (Robustness Ratio)
로버스트 비율은 닉 슬립이 그의 유명한 투자 서한에서 2005년에 언급한 개념입니다. 이 수치는 쉽게 말하면 기업이 얻는 이익에 비하여 얼마나 많은 돈을 고객이 아낄 수 있는지를 수치화한 지표입니다. 예를 들어 버크셔 해서웨이의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에 고객들은 경쟁사가 아닌 가이코를 선택함으로써 10억 달러 정도를 아낄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가이코의 2004년 보험 영업이익 기준으로 투자이익 역시 10억 달러였습니다. 다시 말해 가이코의 초과이익을 고객 및 직원과 주주가 1대1 비율로 나눠가진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닉 슬립의 대표적인 투자 사례인 코스트코의 경우 초과수익이 오히려 더 큰 비율로 고객에게 돌아갑니다. 2004년 기준 코스트코의 초과이익은 고객 및 직원과 주주가 5대1 비율로 대부분 고객에게 돌아갔습니다.
닉 슬립은 이러한 비율을 다른 기업들이 따라가는데 비용이 너무나도 많이 들기 때문에 코스트코가 견고한 해자를 갖추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샘스 클럽이 코스트코와 같은 비율로 고객들에게 초과수익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연 14억 달러 정도의 추가적인 지출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당시 샘스 클럽을 소유하고 있던 월마트의 순이익이 90억 달러였던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따라하고 싶다고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입니다.
이 방식은 위에서 설명한 재무지표의 활용에 비해 분석이 어렵습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이러한 지표들을 일일히 확인하는 것은 기업이 매우 공개적으로 이런 수치들을 밝히지 않는다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이 의의를 갖는 것은 단순히 재무지표만을 활용한 분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코스트코의 경우 이러한 방식의 초과수익 공유로 인하여 재무 지표만 봤을 때는 해자를 떠나 투자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보였습니다. 더 낮은 가격으로 고객에게 돌려주는 방식은 다시 말해 모든 이익 지표를 낮아지게 만들며 위에서 설명한 모든 지표가 이익을 기반으로 한 점을 고려하면 이 수치들은 엉망이 될 것입니다. 아마존 역시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마존 역시 저가 정책을 기반으로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추가적으로 미래 성장을 위해 압도적인 금액을 재투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존은 많은 회계연도에서 적자를 기록했으며, 위에서 소개한 수치들의 계산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단순히 재무 지표를 바탕으로 한 수치만을 봤을 때 아마존에게 해자라는 것은 전혀 없어보이겠지만, 상식적인 개념에서 아마존에 해자가 없다고 한다면 그 누구도 공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로버스트 비율은 단순한 재무지표로 잡아낼 수 없는 해자의 강력함을 정량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해자의 정성적 평가와 정량적 평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해자에 대한 평가는 정성적 평가와 정량적 평가가 만났을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이 기업이 해자를 가지고 있다는 방식의 정성적 평가는 기업의 실제 성과에 직결되는지 아닌지에 대한 확인을 게을리하게 되며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 해자에 대한 분석의 전부가 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저런 수치만을 확인하는 정량적 평가는 위에서 언급한 아마존의 경우처럼 평범하게 생각했을 때도 해자가 있는 기업에 해자가 없다는 숫자에만 기반한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해자에 대한 분석은 펀더멘털 기반 투자에 있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인만큼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결국 투자는 이야기와 숫자의 결합입니다.
7/29/2023
Value Investor's Sanct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