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의 작은 용기는 무엇인가?

by 밸류비스 박혜형

우리는 매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소식을 접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도 순식간에 우리의 일상이 되는 시대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워진 세상 속에서 옆자리에 앉은 이웃의 마음은 더 멀어진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은 고집불통이 된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경험이라는 동그라미가 하나씩 늘어나면서, 우리의 생각도 더욱 단단해진다. 내 경험, 내 관점, 내 세계관... 이런 것들이 마치 철근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간다. 그러다 내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는 누군가를 만나면? 아, 그때의 그 기분이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반갑다. "역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이 지구상에는 8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산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한다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드라마가 될 것이다. 다행히도 SNS와 미디어는 매일같이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몇 년 전, 내가 한창 한국형 D&I(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을 때, 내 아이가 보여준 한 일화는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래서 종종 이 에피소드를 강의 때 활용하고 있다. 그때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가 국어 시험지를 받아온 날이다. 1개를 틀려서 와서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 보았다. '소매, 단추, 수건, 호주머니' 중 다른 하나를 고르는 문제였다. 너무 쉬운 거 아닌가? 근데 아이는 빨간색 동그라미를 받아왔다.


쭈니 문제집.png


"이걸 왜 틀렸지?"라는 생각에 물어보았다.

“쭌아 너는 이 문제에 답이 왜 단추라고 생각해?”

그런데 아이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아이가 나를 쳐다보며 엄마는 이런 것도 모르냐는 식의 너무나도 당당하고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그 태도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엄마, 소매랑 수건이랑 호주머니는 실로 만들어졌잖아요. 근데 단추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잖아요. 그러니깐 답은 단추에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40년 넘게 '옷'이라는 카테고리로만 세상을 보던 내게, 8살 아이는 '재료'라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선물한 것이다. 마치 뉴턴의 사과처럼, 그 순간 나의 고정관념이라는 중력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우리 사회는 묘하다. 다양성을 외치면서도 '정답'을 강요한다. 마치 수학 문제처럼 하나의 답만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인생은 수학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술 시간에 더 가깝지 않을까? 빨간색으로 그린 하늘도, 파란색으로 그린 당근도 틀린 게 아니다.


우리는 모두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살아간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옷차림, 말투, 심지어 피부색이나 종교적 상징물까지도 우리의 마음속에 미세한 파동을 일으킨다. 중요한 건 이런 편견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마주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용기'라고 하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이나, 부패를 고발하는 내부고발자처럼 극적인 행동을 떠올린다. 하지만 진정한 용기는 우리의 일상 속 작은 순간들 속에 숨어있다. 청각장애인 캐셔와 소통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꺼내든 메모장 한 장, 낯선 이방인을 향해 건넨 따뜻한 미소, 소수자의 이야기에 기울인 진심 어린 귀... 이런 작은 용기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조금씩 더 따뜻하게 만들어간다.


마치 수많은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내듯, 우리의 작은 용기가 편견이라는 단단한 벽에 균열을 낸다. 때로는 더디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마치 봄이 오는 것처럼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오늘 하루, 혹시 다름을 인정하고 편견을 깨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순간'은 없었는가? 내일은 그 순간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당신의 작은 용기가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수도 있다. 마치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 수 있다는 나비효과처럼.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오늘 하루, 나의 편견을 깨기 위한 작은 용기는 어디에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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