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 박과장님은 여자인데도 일 잘해요.

칭찬 맞나요?

by 밸류비스 박혜형


"우리 팀 박과장님, 정말 대단하죠?"
"맞아요, 여자인데도 일 잘하시잖아요?"

필자는 15년 전, 처음 조직의 리더가 되었을 때 이런 '칭찬'을 자주 들었다. 당시 팀은 남자 4명, 여자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남자 팀원들은 여자 상사가 낯설어 어색해 보였고, 여자 팀원은 처음으로 여성 상사와 일하게 되어 기대감을 표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직장 내 성차별의 76%가 '미묘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선의의 차별'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차별인 줄 모르고 하는 차별이 가장 위험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360_F_562145447_evqndM5QL4UWMzaoHCVzkbK7qAqWRlsV.jpg 출처 : Adove Stock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20세기의 세계적인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 언어심리학자들은 이를 '언어상대성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결정하고, 나아가 우리의 행동까지 좌우한다는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최신 연구(2024)는 '선의의 차별적 발언'이 받는 사람의 자아존중감과 업무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놀랍게도 노골적인 차별보다 '칭찬'을 가장한 차별이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응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결혼, 임신, 출산, 유산, 육아를 경험하며 필자의 경력 개발은 순탄치 않았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성리더십과 다양성, 포용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돌아보니 과거의 나는 '착한 차별'에 너무 무감각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안일한 태도로 방관자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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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좌) 구글 사이트, (우) 국민일보


구글은 2023년부터 'Language Matters' 캠페인을 시작했다. 직원들의 일상적 대화에서 무의식적 차별을 줄이기 위해서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국내 기업들도 변화하고 있다.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님' 호칭을 도입했고, 직급을 없애고 '님' 또는 '프로' 라는 호칭으로 통일하는 기업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언어습관이 만드는 세 가지 함정이 보인다.

첫째, 차별이 일상화된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보이지 않게 되고,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점점 무감각해진다. 마치 미세먼지처럼, 보이지 않아서 더 위험하다.

둘째, 편견이 영속화된다.

"여자인데도 일 잘하는" 박과장은 영원히 '예외적 케이스'로 남는다. 실리콘밸리의 한 연구는 이를 'Eternal Outsider Syndrome(영원한 외부인 증후군)'이라 명명했다.

셋째, 자기검열이 내면화된다.

"나는 '여자인데도' 잘하는 사람이어야 해"

"내가 실수하면 '역시 여자라서'라고 할거야" 이런 생각들이 무의식중에 자리잡는다.


이는 비단 성별의 문제만이 아니다.

"나이 많은데도 열정적이시네요"
"장애가 있는데도 밝으시네요"
"지방대 출신인데도 실력이 좋으시네요"


'~인데도'라는 말 속에 숨어있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은 모두 같은 패턴이다.


마치 새장 속의 새를 보며 "이렇게 좁은 곳인데도 잘 지내네!"라고 칭찬하는 것처럼.

그 말 자체가 새장의 존재를 당연히 여기는 것처럼.

칭찬이라고?

아니, 이건 독이 묻은 칭찬이다. 달콤한 말 속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차별의 코드이다.


2025-02-12 07 07 46.png 출처: 휴먼다이나믹


옥스포드 대학의 최신 연구(2024)는 이런 '내면화된 차별'이 가져오는 영향을 분석했다. '여자인데도'라는 말을 자주 들은 여성 관리자들은 그렇지 않은 관리자들에 비해 도전적인 프로젝트 지원을 20% 적게 하고, 승진 기회에 대해 30% 더 소극적이며,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평균 40% 더 높다는 연구결과였다.


"문화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행동들이 모여 형성되는 것이다."
-제프 베조스-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사용이 바로 그 '작은 행동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제안하고 싶다.

다음에 "~인데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려 할 때, 잠깐 멈춰보는 건 어떨까?

"박과장님은 정말 일 잘하시죠?"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조건 없는 인정. 수식어 없는 칭찬. 그게 진정한 칭찬이고, 진정한 포용의 시작이다.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가 보는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은 다시 우리의 말을 만든다.

작은 말의 변화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오늘, 당신의 말 속에는 어떤 "~인데도"가 숨어있나요?

함께 찾아보고 바꿔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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