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하교 후 집에 가는 길에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았습니다.
같이 노는 친구(철수)가 헤어질 때 항상 아쉬워하며 좀 때를 씁니다.
저의 아이(쭈니)는 그 아이와 노는 게 그리 재밌지 않은 건지 간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더 큰 건지 그리 때를 쓰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마들은 힘듭니다.
혹여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 다치는 건 아닌지, 아이가 기구에 올라갈 때 미끄러지지는 않은지 눈은 아이를 쫓느라 바쁩니다. 매일 하교 후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걸 추운데 지켜보고 있자니 같이 놀던 엄마도 지쳐 어제는 20분만 놀자고 아이에게 먼저 얘기했고 시간이 되었을 때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철수가 쭈니 때문에 자기가 기구를 더 많이 타지 않았다고 징징 대었습니다.
바라보는 저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철수 엄마는 “ 철수야, 다음주에 쭈니랑 상의해서 놀자.”라고 얘기했습니다.
쭈니는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엄마, 생각은 다 다른 거예요. 자동차를 보면 나는 장난감을 생각하는데, 철수는 군인을 생각해요. 이건 different idea 에요. 생각은 다 다른 거예요. 다른 거지 틀린 건 아니에요”
아이가 이렇게 얘기하는데 순간 당황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이든 학교든 어딘가에서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를 교육받은 듯했습니다. 친구랑 저랑 생각이 다름에 대해 아이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다음주에는 철수가 하자고 하는 놀이를 하도록 하자.”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 순간 저에게 떠 올랐던 생각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철수가 쭈니 때문에 기구를 못 탔다고 얘기하는 그 아이의 말이 마치 저를 보는 듯했습니다. 저도 남편에게 종종 ~~ 때문에 못했잖아. 이런 말을 물론 남편 한정으로 좀 많이 하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저도 종종 이런 발언을 한다는 것이었고, 상대방이 이런 말을 들으면 참 불편하겠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둘째, 쭈니가 친구와 자기의 생각이 다르지만 그건 다른 거지 틀린 거는 아니다 라고 저에게 영어로 different idea라고 얘기하는데, 언제 아이가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아이가 저보다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를 더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또 순간 제 아이가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모든 부모는 자기 아이 한정 팔불출입니다.
일주일째 제가 다양성&포용성 프로그램 개발 연구에서 진도를 못 나가고 있는데, 매 순간 이렇게 저에게 깨달음을 주는 제 아들이 정말 저의 스승인 듯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 담임선생님께서 학부모님께 보낸 안내장에 인사를 이렇게 시작해 주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꽃이 모여 학급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고 합니다. 아직은 여리고 어린 꽃들이 00초 1학년 00반에 모였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꽃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키며 성장 위해서는 「함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자신의 아름다움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 인정하고 이해함을 바탕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1학년 00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과 학교가 하나 되어 좋은 꽃밭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시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행동 습관, 수칙에 대한 안내들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아름다운 꽃밭 관리자 000 선생님이라고 쓰셨는데 마음이 너무 따뜻했습니다.
코로나로 입학식에 직접 참석할 수도 없어 담임선생님과 아직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도 못했지만 이 안내장만으로도 아이가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 아이들 모두 똑같이 아름다운 학생입니다. 서로 다른 빛깔의 아름다움을 지켜주기 위해서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나가기를 희망한다는 말에 제가 공립학교 선생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 편견,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연구들에 좀 더 본질적인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많은 편견들... 성인이 된 저는 제가 자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편견이 존재함을 매일매일 자각은 하는 듯한데, 사실 개선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개선되지 못하는 제 삶에 사실 괜스레 실망하기도 하고 그렇게 몇 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머리는 굵어져 지식은 가득 차 있는데 지혜가 부족하다 보니 어리석은 실수들을 종종 해 오며 살아왔습니다.
오늘 아침 골웨이 키넬의 <봉오리>라는 시를 접하며 제가 제 삶에 개선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이 자기 축복임을 알았습니다.
봉오리는
모든 만물에 있다.
꽃을 피우지 않는 것에게도,
왜냐하면 모든 것은 그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피어나기 때문.
그러나 때로는 어떤 것에게 그것의 사랑스러움을
다시 가르쳐 주고
봉오리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말로, 손길로 다시 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정말 사랑스럽다고.
그것이 다시금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꽃을 피울 때까지.
... 중략...
존재 그 자체만으로 우리 모두는 귀한 한 인간입니다.
모든 꽃과 같이 인간도 자기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나 잘했어. 나 참 잘하고 있어. 나는 사랑스러워 이렇게 나에게 칭찬해 주었습니다.
아이가 저에게 뭔가 자신이 원하는 걸 해 달라고 자기 나름의 애교를 부릴 때 “귀염둥이 쭈니” 하고 자신을 지칭합니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라 이런 순수한 마음과 행동을 하는 것이겠죠. 아이가 스스로 자기를 사랑스럽고 귀염둥이라고 부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저도 아이처럼 "사랑스러운 혜형이"라고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로 살포시 마음먹어 봅니다. 다른 누구에게 칭찬받으려고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나 스스로에게 칭찬해 줄 수 있는 그 마음을 가져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