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보카도 Mar 22. 2020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속 '인생이란 무엇인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봐야 할 영화,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수능 때면 주파수를 바꿔도 라디오에서 주야장천 들리는 곡이 있다. 바로 이한철의 <슈퍼스타>다. 경쾌한 멜로디 하며 희망적인 가사 때문인지 굉장히 밝은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페퍼톤스의 'Ready, Get Set, Go!'와 유사한 찬란함이 내게 손짓하는 듯하다. 그런데 때로는 밝은 톤보다 담담한 노래들이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넌 잘 될 수 있어!'와 같은 느낌표가 수 놓인 강박관념에 의한 파이팅이 아니라 '그러려니' 류의 무심함이랄까. 그래서 나는 이한철의 수많은 명곡들 중에 <흘러간다>를 제일 좋아한다.


흘러간다. 바람을 타고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시린 마음 가녀린 손 끝 옷깃을 세우고 흘러간다. 지난날 나에게 거친 풍랑 같던 낯선 풍경들이 저만치 스치네 바람이 부는 대로 난 떠나가네


한 편의 시 같은 가사도 가사지만 이한철이 시조를 읊듯 노래를 흥얼거린다. 여러 번 우려낸 녹차맛만큼이나 진한 여운을 남기는 이 노래만큼이나 진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가 바로 <페인 앤 글로리>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스페인이 낳은 거장 감독으로 필모그래피를 보면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이 결이 다른 영화들을 많이 찍었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줄리에타>, <내가 사는 피부> 네 작품만 봐도 서정적이면서도 과감하고 애틋한 작품들을 배출한 위대한 감독이다. 미술로 따지자면 유화 같은 느낌이 든다. 천재 화가가 캔버스에 막 붓질을 해댔는데 '처음에는 뭘 그리고자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을 가지다가 마지막에 완성된 그림을 보고 나면 아! 하는 탄성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색채의 마술사 같은 느낌이랄까. <페인 앤 글로리> 역시 그랬다. 처음부터 대장이 꿈틀꿈틀 하는 건가 뭐지 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아.......' 하며 역시! 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를 쉼 없이 오가며 뒤죽박죽(?)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이 모든 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착착 맞아떨어지게 된다. 안간힘을 맞춰지지 않던 큐빅 퍼즐을 던져두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큐빅 퍼즐을 무심코 돌려봤더니 큐빅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말이다. 원효대사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나서 깨달음을 얻을 때의 '아' 하는 감정이랄까. 고전소설 <구운몽>의 경우 몽중몽 구조를 의도하고 썼다는 느낌이 들지만 <페인 앤 글로리>에서는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스포 같을 수 있지만 결국 '인생은 영화다.' '영화가 곧 내 인생이다.' 이런 느낌이랄까. 요 근래 본 엔딩 중에 제일 울림이 있는 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편만 보고 반해서 바로 극장으로 달려갔던 영화 <그레이트 뷰티>의 주인공 젭이 떠올랐다. 책 한 권을 내고 단번에 상위 1%에 올랐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는 주인공 젭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내가 65살이 되고 나서 며칠 후에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젠 싫은 걸 하면서 시간낭비할 수 없단 거다.


그레이트 뷰티의 젭, 페인앤글로리의 살바도르 말로, 당신은 어떤 인생을 택할 것인가.


20대에 대작가의 반열에 오르고 40년 넘게 화려한 삶을 살아온 그는 분위기가 고조된 파티에서 쓴소리를 날린다. 친구들에게 우월감을 가지지 말고 스러져 가는 마당에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자고. 40년 넘게 욜로처럼 파티광으로 살아왔던 그의 심장에 울림이 있었던 이유 역시 화려한 미인의 등장에 있지 않았다. 뻔한 클리셰 같을 수 있지만 첫사랑의 부고 소식 때문이었다. 명예와 부를 거머쥐고 수많은 미인들을 보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젭에게 울림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젭은 왜 다음 작품을 안 쓰냐는 말에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해서'라고 말을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J.D. 샐린저가 자발적으로 은둔자가 된 것과는 달리 젭은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를 다 누렸음에도 쓸쓸해 보였다. 행복의 기준과 척도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영화 <그레이트 뷰티>의 젭보다 <페인 앤 글로리>의 육체와 정신이 모두 불안해서 헤로인에 의지하지만 웬만한 것들에는 초연해진 살바도르 말로(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더 행복해 보였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아니한가.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거라고. <그레이트 뷰티>의 젭이 깨달았어도 계속 파티를 하는 빈 껍데기 인생을 살게 될 것 같다면 <페인 앤 글로리>의 살바도르 말로는 인생사에서 무수히 많은 고통의 지뢰밭을 지나오면서 그런 고통들에 무뎌져서 반열에 올라서 '왜 사냐건 웃지요'의 삶을 살게 될 것 같달까. 그 깨달음으로 또다른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는 위대한 감독으로 살아가게  되겠지.



페넬로페 크루즈 이 언니 무이 에르모싸!!! 아름다워라.....


엄밀히 말하면 영화는 친절하지 않다. 그런데 영화가 너무 아름답다. 줄리엣 비노쉬만큼 최애 하는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는 아무 옷이나 입어도 예쁘고 하얀 동굴이었던 집이 페인트칠로 새롭게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체스판 마냥 뚫린 천장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영화란 암모니아 냄새와 재스민 향기, 한여름의 산들바람이었다.'


라는 표현에서는 풋사과를 한입 깨물었을 때의 산뜻함 마저 느껴진다. 게다가 영화에는 우연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나오지만 막장적인 요소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모든 우연들이 결국은 주인공의 중독에 이르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주는 요소들로 나온다. 전시회에서 유년시절에 보았던 그림을 보고는 '어떻게 왔는지보다 지금 그림이 주인을 찾게 중요하지 않냐.'는 무심함이 왜 그렇게 내 마음을 울렸는지 모르겠다. 타임슬립을 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법 같은 영화였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그만의 방식으로 담겨 있었기에 내 마음은 요동치듯 출렁일 수밖에 없었다. No Pain, No Gain 어찌 보면 너무나도 식상한 이야기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아름다우니 애정이 샘솟을 수밖에. 떼끼에로 페드로 알모도바르!





작가의 이전글 BBC가 예측한 미래의 모습, 당신은 동의하십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