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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Mar 29. 2020

<종이의 집>이 비영어권 1위 드라마인 이유

이보다 완벽할 수는 없다, 역대급 한탕 대작전

2015년, 나르코스 시즌1이 나왔을 때, 열광하면서 10화를 정주행 했다. 마약을 다룬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가 최고라길래 보다가 포기했지만 나르코스는 오프닝과 함께 흘러나오는 Rodrigo Amarante의 Tuyo에 꽂혀서 보기 시작했고 단숨에 10화를 다 봤다. 나르코스는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드라마인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서 매 화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다. 특히, 폭탄이 터지는 장면들이나 혈투가 벌어지는 장면들은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아찔하다. 폭탄 나오고 누구 죽고 하는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 내가 나르코스에 빠졌던 것은 파블로 에스코바르 역을 맡은 와그너 모라의 연기력과 너무 진짜 같은 드라마 연출력 때문이었다. 실제로 드라마는 콜롬비아에서 제작되었고 드라마 곳곳에서 남미 특유의 냄새가 난다. 나르코스의 경우 시즌3까지 나오고 나서 나르코스 멕시코 버전이 이후에 나왔는데 솔직히 시즌3에서 그쳤으면 더 좋았을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실제로도 유명해서 영화화된 적도 있으나 영화는 드라마만 못하다. 2017년, 나르코스 시즌3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스페인어권 드라마는 거의 안 봤다. <꽃들의 집>은 막장 드라마 특유의 중독성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몇 에피를 봤지만 정주행에는 실패했고 <이파네마의 여인들> 은 여주가 예뼈서 보다가 스토리가 그저 그래서 패스했다. 그리고 2020년, 비영어권 드라마 중 스트리밍 1위라는 이 드라마를 시즌3까지 정주행 하는 데에 성공했다. 4월 3일에 공개될 시즌4를 기다리며 애정을 듬뿍 담은 <종이의 집> 리뷰를 써 보고자 한다.



*******스포 주의********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천재' 캐릭터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Profesor라고 불리며 이 모든 도둑질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혹여 모를 변수까지도 체크해서 조폐국 밖에서 전두 지휘하는 리더는 나르코스의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조금 닮았다. 약간 너드 같은 느낌이 나면서도 시종일관 침착함을 잃지 않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감탄할 정도다. 완벽주의자 교수도 자신이 예상치 못했던 변수인 '사랑'에 빠져서 일을 그르칠 뻔하게 된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늘 사랑이 등장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도 '사랑' 이 큰 변수로 작용하는데 작전의 '장애물' 혹은 '위기'에서 매번 이놈의 사랑이 문제아로 등장한다. 스페인 조폐국에 들어가 24억 유로를 찍어내기 위해 8명의 일면식이 없는 범죄자들이 모여서 교수의 리드 아래 합숙을 하게 된다. 서로의 실명에 대해 궁금해 말 것, 사랑에 빠지지 말 것이라는 조건을 붙였지만 금기시되는 조건을 지키면 재미가 없으니 리우와 도쿄는 사랑에 빠진다. 이 둘의 찐득한 사랑 덕분에 시즌2에서 끝날 수 있었던 드라마를 시즌3, 시즌4까지 가게 하는 추동력이 된다. 시즌제 드라마의 단점이 드라마가 인기 있다는 이유로 이야기를 질질 끌면서 그다음 시즌으로 터무니없이 넘긴다는 건데 이 드라마는 매 회 궁금해하는 시점을 잘 끊기 때문에 질질 끈다는 느낌도 없다. 시즌1을 볼 때는 과연 이들이 조폐국에서 잘 나올 수 있을까? 가 의문이었는데 시즌2에서 진짜 성공하는 것을 보고 드라마가 이제 끝나나 싶었는데 그놈의 '사랑'과 말괄량이 '도쿄' 때문에 이제는 은행의 금을 터는 것을 목적으로 또 다른 범죄 작전이 시작된다. 시즌1에서 범죄 소탕작전의 수장을 맡은 라켈 경감은 결국 시즌 3에서 사랑을 택하고 '리스본'이라는 이름으로 도둑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으헤헤헤헤' 하고 웃는 게 마스코트인 덴버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된 조폐국장의 비서와 사랑에 빠져서 그녀는 '스톡홀름' 이 된다. '스톡홀름 증후군'에서 유래된 그녀의 이름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무서운 구석이 있지만 드라마를 보면 둘은 정말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 드라마의 내레이션은 '도쿄'라고 불리는 발암 물질 캐릭터가 끌고 간다. 처음에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충동적인 행동을 일삼고 분열을 일으키고 뭐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귀여운 '리우'는 왜 저런 여자와 사랑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인가! 하고 분개할 뻔했다. 교수의 형, 베를린 말대로 왜 도쿄를 스카우트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 캐릭터는 난리 부르스를 치며 위기감을 고조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도쿄는 발암물질이지만 나이로비라는 여자 캐릭터가 정말로 매력적이다. 일단 인상 자체가 서글서글하며 장난기가 있지만 아닌 건 아니어서 해야 할 말은 꼭 하고 여자를 무시하는 남자한테 한 방 날려주는 이 언니가 시즌3 마지막에 총을 맞아버렸다. 시즌4에서는 살아날 수 있을까.  '도쿄' '리우' '나이로비' '베를린' '리스본' 등에서 알 수 있다시피 도둑들의 이름에 세계 도시 이름을 붙였다. '서울' 이 있었으면 조금 더 신나게 드라마를 봤을 것 같기도?


등장인물들 각자가 가진 의외성과 매력, 교수의 치밀한 작전과 고도로 지능적인 심리 전술을 보는 재미 때문에 이 드라마는 웰메이드라고 불릴 수밖에 없다. 그 어떤 드라마도 범인이 이렇게까지 갖가지 변수를 생각하고 경찰을 곤경에 빠뜨리고 착각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라 조폐국에 들어가서 24억 유로를 찍어내기 위해 경찰과 시간을 버는 전쟁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신선한가. 자체적으로 돈을 찍어내는 것이기에 도둑질이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것 하며 교수가 대담하게 라켈 경감 근처에서 서성거리면서 호랑이 소굴에 직접 들어가는 대담함을 보고 있노라면 교수 천재 아니야?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교수가 앞으로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해서 자꾸 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친형인 '베를린'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이유로 언론에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흘린다거나 하면서 '절대로 누군가를 죽이면 안 된다.'는 자신만의 주관으로 차분하게 상황을 해결하는 모습은 교수 캐릭터가 지닌 의외성이었다. 혈연에 얽매이지 않고 공은 공, 사는 사를 지키며 인간적인 면이 있는 교수, 얼마나 매력적인가. 나라도 이 교수와 사랑에 빠질 것만 같다.



'베를린' 은 묘하게 킬링 이브의 조디 코머와 닮아서 같은 사이코패스 커플로 나와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과 '교수'가 조폐국 터는 작전을 앞두고 식사를 하면  Bella Ciao 이 노래를 부르는데 장엄하면서도 유쾌해서 한동안 이 노래만 주야장천 들었다. Bella Ciao는 실제로 이탈리아 반파시즘 저항군이 불렀던 노래로 한국어로는 '안녕 내 사랑'이라는 의미다. 스페인어 Adios 못지않게 아르헨티나 칠레 쪽에서는 Ciao를 많이 쓰곤 하는데 '챠오챠오'가 델리스파이스 노래 '챠우챠우' 스러워서 귀엽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드라마에서 최고의 장면은 두 형제가 그 노래를 함께 부르는 대목이었다. 사이코패스처럼 보이던 베를린이 시즌2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총격으로 전사하는 지점 역시 캐릭터가 가진 의외성이었다. 물론 극의 범죄자 무리뿐만 아니라 인질들 중에서도 매력적인 캐릭터와 발암 캐릭터가 있다. 배우 최민식을 닮은 조폐국장은 일부 인질들을 나가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지만 시즌3에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은행에 들어오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시전 한다. 아내와 통화하면서 내연녀 이름을 부르는가 하면 탈출하는 데에 성공해서 인질로 잡혀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만 가족도 잃고 내연녀 '스톡홀름' 도 잃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가다가 다시 소굴로 들어가는 발암 캐릭터 어쩜 좋아 어후 진짜! '도쿄' 보다도 조폐국 국장 아르투르가 정말 싫었다. 반면 시즌1의 인질 중 특급 인질인 '앨리슨 파커'는 외유내강인 캐릭터로 '나이로비' 만큼이나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앨리슨 파커'는 SNS에 속옷 입은 자신의 모습을 올린 남자 때문에 전전긍긍하다가 '리우' 한테 그 사진만 지우겠다고 하면서 폰을 켜게 되고 오리무중이었던 경찰은 덕분에 단서를 얻게 된다. '앨리슨 파커'의 비중이 생각보다 작았던 게 아쉬웠다. 시즌1 10화까지는 경찰을 응원했는데 드디어 라켈이 한 방 먹이는 것을 보고 오예를 외치며 교수가 사랑에 빠지면서 오리무중이 되는 것을 보며 망했구나 싶었는데 시즌2에서 탈출에 성공하며 패션쇼 하듯 거리를 활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박수를 쳤다. 드라마를 보면 알겠지만 음악들과 편집이 드라마 '킬링 이브' 만큼이나 감각적이다. 나르코스 오프닝 곡만큼이나 Cecilia Krull의 My Life Is Going On 이 묘한 분위기와 어울린다. 뿐만 아니라 시즌 3의 Guajira Guantanamera와 Agustin Ramos의 Carridos에서 스페인권 특유의 끈적끈적하면서도 정겨운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들썩들썩 너무 신나서 어깨춤을 추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종이의 집'에서는 큰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물론 재미와 의미를 고루 갖추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드라마가 되겠지만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설정과 캐릭터의 매력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왜 비영어권 드라마 중 스트리밍 1위 일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측이 가능해서 재미가 없는 드라마를 혹평할 때 '뻔한 이야기'라는 말들을 하는데 이 드라마는 발암 캐릭터 몇몇을 제외하고 나면 예상이 불가능한 이야기의 의외성 때문에 극찬할 수밖에 없다. 의외성의 주요 원인이 사랑이라는 것도 놀라운 요소다. 교수와 베를린 형제의 서사와 나이로비의 개인 서사, 리우의 서사, 덴버와 아버지 모스크바의 서사 등 부성애, 모성애로 점철된 이 드라마는 통속적이지만 톡 쏘는 사이다같이 시원해서 울 틈이 없다. 시즌4에서 나이로비 언니 꼭 살려주시고 시즌10까지 쭉 만들어주세요. 4월의 내 행복은 <종이의 집> 당신이 책임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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