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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Apr 09. 2020

<부부의 세계> 속 불륜이 사랑일까?

본격 본능탐구 드라마, 4화 이후가 더 궁금하다


"본능은 남자한테만 있는 게 아냐!"


요즘 핫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극 중 김희애의 대사에 누군가는 무릎을 탁 쳤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즉각적으로 반응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쪽인가. 전자라면 앞으로 극 중 김희애가 어떻게 복수를 해 나갈지 궁금해서 드라마에 열광할 것이고 후자라면 기존의 콘텐츠가 답습했던 남자의 바람에 대한 여자의 인내가 당연한 나머지 드라마 보기를 그만둘는지도 모르겠다. <부부의 세계>는 <미스티> 감독의 2년 만의 후속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많이 했던 드라마였다. 빈지뷰잉이 가능한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 드라마를 제외하면, TV라는 매체를 통해 일주일에 2회씩 방영되는 드라마의 경우,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루즈해지거나 지루해서는 안 된다. 안 그래도 '빨리빨리'가 중요하고 성급한 우리 민족은 '고구마 전개'를 참지 못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초반에 잘 나가다가 중간에 삼천포로 빠지거나 갈 길을 잃은 이야기를 끝까지 본 적이 없는 냉철한 시청자다. 드라마 <미스티>는 그다음 회가 너무 궁금해서 매 회 본방 사수했던 몇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였다. 격정적인 멜로에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해서 인물들의 심리묘사를 탁월하게 보여주는 연출력 때문에 드라마에서 눈을  수가 없었다.   



<부부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스티>에서는 남녀관계와 사내정치 두 측면에서 야망과 인정 욕구를 치밀하게 그려냈다면 <부부의 세계>에서는 사내정치보다는 남녀관계에 초점이 맞춰졌다. 어찌 보면 누군가는 어디선가 들어볼 이야기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완벽한 여자와 결혼한 무능한 남편이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우게 되고 그 여자애가 임신을 하게 되는데 완벽주의 커리어우먼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하고 복수하는 이야기. 로그 라인 자체로는 큰 매력을 못 느낄지 모르겠지만 극 중 인물들의 심리를 그려내는 방식이 탁월하다. 솔직히 선우(김희애)가 태오(박해준)에게 왜 빠져서 결혼까지 하게 되는지 납득이 안 가긴 하지만 일단 사랑해서 그렇다 치고 태오(박해준)가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본인은 '우위에 서고 싶지만 서지 못해서 오는 결핍' 때문이라고 본다.  유부남에게 빠지는 다경(한소희)도 이해가 안 가지만 극 중 인물 설명에 의하면 또래의 남자들에게서는 느껴지지 못하는 무언가를 느꼈다고 하니 그렇다 치자. 제혁(김영민)의 경우 자신이 친구인 태오(박해준) 보다 잘났음에도 불구하고 잘난 여자와 결혼해서 뭐라도 되는 양 구는 태오(박해준)가 아니꼽고 왜 나는 잘났음에도 불구하고 선우(김희애)같이 잘난 여자를 만나지 못했나 하는 자괴감에 선우(김희애)를 찔러보는 것이다. 솔직히 드라마에서 제일 불쌍한 캐릭터는 예림(박선영)이다. 한 마디로 결혼을 잘못한 탓에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남편 차에 추적기까지 달게 되지만 정작 따지지도 못하고 이혼도 못 하는, 그야말로 쇼윈도 부부로 화병이 생기고 만 불쌍한 캐릭터다. 개인적으로 극이 진행되면서 이 캐릭터가 화병을 표출하고 자신의 인생을 똑 부러지게 살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따지면 극 중 승자는 명숙(채국희)이다. 버젓한 자신의 직장이 있고 커리어도 확실한데  솔로라서 여러 복잡한 관계에 얽힐 필요가 없는 자유로운 인물 아닌가.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그랬다. 이 드라마는 본격 비혼 장려 드라마라고. 명숙 입장에서는 이 모든 상황이 얼마나 재미있는 막장 드라마겠나. 선우 말마따나 명숙은 선우와 태오 두 사람 사이에서 줄 타기를 잘하면서 첩자 노릇을 하다가는 두 쪽 모두에게서 지탄을 받을는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명숙 입장이라면 나는 태오의 바람을 선우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러나 명숙은 직장에서도 잘 나가  선우를 질투하고 있고 그녀가 잘 되는 것을 그다지 바라지 않는, 표면적으로만 친한 관계라서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선우 빼고는 모두가 태오의 불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파티에서 칼을 들고 서 있다가 칼을 꽂는 상상을 하는 선우가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외모, 커리어 모든 걸 다 갖춘 여자가 뭐가 못나서 왜 저런 상황까지 이르게 돼서 비참한 기분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극이 진행되면서 선우가 어떻게 복수를 해 나갈지 궁금해졌고 그녀가 더 이상 모른 척, 참지 말고 한 방 날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재혁을 통해 한 방 날리고 있으며 앞으로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세상의 남자는 바람을 피우는 남자, 들킨 자 두 부류로 나뉜다는 재혁의 시대착오적인 발언은 재혁이라는 캐릭터를 깎아먹는 요소였다. 자신의 바람을 정당화하기 위한 발언에 불과하다. 재혁아 그래서 너는  안 되는 거란다. 사실  지금 선우보다 불쌍한 캐릭터는 준영(전진서)이다. 아빠의 외도 사실을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지 아니한가. 만약 두 사람 사이에 준영이 없었다면 어떘을까. 쉽게 이혼하고 쿨하게 바이 바이 했을까. 사실 준영 때문에 현서(심은우)를 시켜서 뒷조사까지 시키게 되지 않았을까. 현서가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데이트 폭력 주범자 인규(이학주)가 끼어드니 상황은 앞으로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학주 배우 도피자들 때부터 딕션이나 연기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멜로가 체질 때도 그렇고 너무 못된 역할을 너무 실감 나게 잘하니 무서울 정도다. 전작 <미스티>에서도 극의 중심인물뿐만 아니라  오 팀장이나 곽 기자 등등 캐릭터들이 선악 여부와 무관하게 매력적이었는데 <부부의 세계>에서도 인물들의 감정들이 디테일하게 표현된다.



물론 선우의 입장에서 드라마가 전개되다 보니 태오와 다경의 사랑이 '사랑' 보다는 '불륜'과 '바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봐도 이는 '사랑' 이 아니다.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둥, '사랑한 게 죄냐'는 둥 리얼 트루 러브와는 다른 결의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최악의 캐릭터다. 차라리 다경을 정말 사랑한다고 했으면 이해는 갔을 것이다. 그럴 수 있지 진짜 사랑이 아주 늦게 찾아와서 그 사람  없으면 안 되겠다는 사랑일 수 있잖아?  실제로 결혼 이후 쳇바퀴 굴 듯 반복되는 결혼 생활에 지쳐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아이엠 러브>와 빅터 레빈 감독의 영화 <5 to7>을 보면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상류층 여성의 이야기와 전 세계 방방곡곡 돌아다녔지만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해 외교관과 결혼한 후 각자의 외도를 존중하는 인생을 살고 있던 여성이 우연히 거리에서 본 9살 연하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 욕망이 억압된 채 살아가던 이들이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는 이야기였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5 to 7> 보다 <아이엠 러브>가 수작인 이유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감독답게 감각적인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어서기도하지만 엔딩에서 엠마가 자신이 안토니오를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선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륜은 불륜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불륜이 극 중에서 사랑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당사자의 심리가 세밀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드라마 <밀회>가 각광받은 이유 역시 혜원(김희애)이 선재(유아인)와의 사랑을 통해 가짜로 점철되어있던 자신을 내던지고 진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자수를 했기 때문 아닌가. 권력과 돈, 명예를 좇다가 자신마저 성공의 도구로 여겼던 자신을 내려놓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절절한 고백이 아닌, 그녀의 깨끗한 앉을자리를 위해 정신없이 걸레질을 한 선재에게 반한 것이다. 태오의 불륜을 무작정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태오의 불륜이 사랑이 아니라 불륜인 이유는 태오라는 매력 제로인 캐릭터가 보여주는 구질구질한 태도 때문이다. 차라리 멋있게 '우리 이혼 하자 난 다경이 정말 사랑한다.' 하면 드라마가 진행되지 않을 터이니 어쩔 수 없지. 5화에 등장하는 윤기(이무생)가 선우의 욕망을 일깨워주었으면 좋겠다. 선우의 극 중 대사처럼 본능과 욕망은 남자한테만 있는 게 아니다. 앞으로의 선우와 예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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