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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May 08. 2020

인생에서 '운'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포스트코로나 시대, 운칠기삼이냐 운구기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덜그럭 소리 내며 취한 날 태우고 달리는 버스 안에 오늘 낮 신문들. 나도 모르게 너와 같은 해 운세보다 울컥 맘이 먹먹해져 몸이 아프단 신문 속 짧은 말.'


가수 김형중의 <오늘의 운세>는 사실 운세와는 무관한 노래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다가 그 혹은 그녀의 생년에 해당하는 운세가 안 좋다고 나오니까 상대가 걱정된다는 미련 가득한 노래다.  나 역시 파릇파릇했던 스무 살 무렵, 네이트에 올라오는 운세들을 보며 내게 어울리는 행운의 색과 행운의 숫자 혹은 패션 등등을 체크했던 때가 있었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물론 내 친구는 여전히 마리끌레르의 운세가 생각보다 잘 맞다며 눈여겨본다고 했고 사주는 점신이 제일 그럴듯하다고 했다. '타로'가 보편적인 이야기를 폭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과학적인 것이라는 누군가의 분석을 듣고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 모든 것은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겠구나. 타로카드 1번을 선택하려다가 4번을 선택하려다 일부러 다시 2번을 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해석이 다 틀렸던 적이 있다면서 결국은 운세를 봐주는 사람이 얼마나 입을 잘 터느냐에 따라 그곳이 용한 집이 되는 것 아니냐며 시니컬하게 굴던 나는 타로 잘 보는 곳을 안다는 말에 괜한 호기심이 생겨서 친구와 함께 오피스텔에 있다는 그 타로 집을 찾아갔더랬다. 세상에 오후 5시 무렵 정도였는데도 우리 앞에는 대여섯 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방도 두 개였는데 더운 날 부채질을 해대며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10분 뭐야 5분 있었나? 다시 시니컬 모드를 장착하고 두리번거리다가 그곳을 나와버렸다. 맛집은 1시간 이상 기다린 적이 있는데 도저히 1시간은 못 기다리겠더라고. 적어도 맛집은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 차례가 되는데 사주 맛집, 타로 맛집, 운세 맛집을 목전에 두고서는 기대감 못지않게 불안감이 나를 잠식해버리더라고. 또 사람 마음이란 게 괜히 안 좋은 말 들으면 찝찝하잖아? 그래서 인기 많은 집은 아마 담당자가 좋지 않은 말도 유하게 돌려서 말해주는 집 아닐까.


돌이켜보면 2011년 무렵에 갔던 철학관이 내 마지막 발길이었는데 그때 맞춘 것들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내 인생의 아킬레스건이 될 뻔했던 예언이 와장창 깨졌던 터라서 다소 시니컬하게 '운세'를 대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시니컬한 나도 인간이라서 가끔은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의 10년 가까이 내 인생을 풀이하는 곳에 직접 내 발로 찾아간 적은 없다. 물론 사주를 공부한다는 친구로부터 대략적인 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친구 또한 이는 참고사항일 뿐이니 적당히 걸러서 각주 수준 정도로 여기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그 타로 집에 가서 내 인생 풀이를 들었더라면 호들갑을 떨면서 인생 타로 집이라며 사방팔방에 전파를 하고 다녔을는지도 모르겠으나 왠지 당분간은 찾을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와 비슷한 전염병을 글에 담아냈던 스티븐 킹조차 인터뷰에서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고 했을 정도로 코로나는 우리의 삶에 막돼먹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인데 코로나로 인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인생은 결국 '운' 인가하는 괴상망측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구의 동생이 원래 이번 학기에 교환학생을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내 2012년을 떠올렸다. 이놈의 코로나로 인해 나의 비바 메히코 라이프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면 나의 20대는 인생 추억이 없는 팍팍한 인생이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찔했다. 물론 코로나가 잦아들고 언젠가는 다시 공항이 붐비는 날이 오기야 하겠지만 어찌 보면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들을 전염병이 앗아가 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뜨악할 수밖에.



그 친구와 내가 베프가 된 것도 우리가 우연히 같은 학교 같은 반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 친구와 내가 소중한 추억을 가진 것도 수많은 장소 중에 하필 그곳에서 만났기 때문이었다. 하나라도 어그러졌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운때가 맞아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일. 역으로 누군가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누군가한테 툭 침을 당하게 되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폭포수 같은 말을 듣다가 비위가 상하는 일을 겪게 되는데 이는 다 운때가 맞지 않아서 발생한 일 아닌가. 이렇게까지 분석적으로 들어간다면 세상만사 다 그러하겠으나 어찌 되었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운' 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단 말이다. 그 '운' 도 결국 인간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반박이 있다면 할 말이 없지만 지금의 코로나는 인간의 백방 노력으로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어쩌면 좋지? 심지어 유럽 일부국가에서는 이동제한명령까지 내려졌는데 말이야. 삶은 깨지기 쉬워서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교훈과 지구를 괴롭힌 주범이 우리 인간들이었다는 자아성찰이 코로나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까.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이 곳곳에서 쓰이고 이제는 '언택트'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1월 이후로 극장과는 발길을 끊은 채 방구석 시네마로 콘텐츠를 소비하지만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져만 가고 언택트보다 컨택트가 더 간절해졌다. 내가 지금 고3이거나 초1이었다면 정말 죽을 맛이었을 것만 같다. 연령대별로 각자의 머릿속에 있는 코로나에 대한 단상이 저마다 다를 것 같기도?


영화 제목이 코로나라니 과연 잘 될까?


코로나가 잦아들지 않고 심각했을 때는 이러다가 앞으로 여행이 힘든 세상이 오게 되면 우리는 여행을 영상이나 VR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페라의 유령 내한 공연 조차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서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던 적이 있었고 대학로 소극장 공연들도 몇몇 관객들 이외에는 텅 빈 채로 진행되고 있으며 각종 소셜 모임과 소개팅들은 '코로나 이후에 만나요'가 되는 웃픈 일마저 벌어졌다. 사람들과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만나는 게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이 소중해서 행여나 늦을까 봐 10분 일찍 집을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코로나가 내게 남긴 결론은 '결국 인생은 운인가.' 하는 다소 허무맹랑한 병맛 진리지만 인생의 발자취를 곱씹어보며 앞으로 다가올 내 인생에 볕만 들어주길 바라지 아니하고 볕과 그늘이 적당히 공존해주며 정상적인 S자형 파동 곡선만 그려줬으면 좋겠다는 아주 소박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 2년째 고시 공부를 하던 선배의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워.'라는 말을 9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해하게 될 순간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때는 그게 뭐가 어렵지 쉬운 거 아닌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는데 그 선배는 이미 그때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있었구나. 전 지구적 재앙인 코로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판도라의 선물인 걸까. 인생은 한 방이 아니고 인생은 운이라는 결론을 얻게 될 줄이야 너무 웃프구나.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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