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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Sep 28. 2020

극혐과 재기발랄 그 사이, 보건교사 안은영

1화부터 6화까지 사랑스러워 죽겠어

넷플릭스 정기 구독자지만 재미있는 게 별로 없어서 몇 달간 거의 호갱 수준에 머물러 있다가 드디어 빈지뷰잉을 했다. 6화를 단숨에 봐 버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상을 끊지 않고 본 게 얼마만인지. 일단 원작인 책을 읽지 않고 영상을 바로 본 사람으로서의 소회는 '너무나도 기발하다.'는 것이다. 미쓰 홍당무의 공효진을 보면서 열광했듯이 나는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고 '소리 질러!'를 연발하고 말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톡톡 살아 숨쉬는 이경미 감독의 개성 강한 연출을 배우들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흡입해버렸다. 사랑스러워 죽겠다. 어떤 연출의 필터를 쓰느냐에 따라 콘텐츠의 모습은 제각기 다른데 이경미 감독의 경우, 과장이라는 방식을 통해 일상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내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출, 기발한 연출, 매력적인 연출

말미잘 같이 생긴 젤리들과 하트 모양의 젤리들이 캔디 크러쉬처럼 팡팡 쏟아질 때 박수 치고 싶을 정도였다. 어떻게 촌스럽지 않을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1화에서 괴물의 모습 역시 기괴한 모습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어서 말이 안 되는 상황인데도 화면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1화 지하실에서 젤리를 퇴치하면서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의 연출은 배꼽을 잡기에 충분했으며 터의 기운이 세서 옥상에서 철조망에 붙어서 좀비 떼처럼 왔다 갔다 거리는 모습의 연출 또한 웬만한 재난영화 혹은 좀비 영화의 정신없는 연출보다 훨씬 현실감 있었다. 어떻게 판타지라는 장르를 이렇게 현실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지 감탄 또 감탄했다. 장르는 판타지지만 배우들이 거의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외모가 그저 예쁘거나 멋진 배우가 아닌, 연기력이 뛰어난 진정한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연출이 찰떡궁합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x발, x이발, 보통 인간의 보통 일상

적나라한 욕이 예고편에 담기면서 화제가 되었다. 외국 콘텐츠의 예고편에서 what the fuck 은 너무나도 자주 나오는 표현인데 아직 우리나라는 고상한(?) 나라라서 그런지 논란이 되는 듯하다. 솔직히 x발 모르는 한국인이 어디 있겠나. 실제로 x발은 보건교사 안은영(정유미)이 자주 쓰는 욕이다. 너무나도 욕을 찰지게 해서 현실감 있다. 욕뿐만 아니라, 폭력도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휴거라고 놀림받는 지형을 러닝머신에 세워두고 속도를 올리다가 봉지를 씌우는 대목, 운동화를 박살 내버리는 대목 등등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는 성장 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모습들 역시 과감 없는 연출이 돋보였다. 일단, 보통의 성장 드라마에서 클리셰처럼 나오는 풋풋한 사랑이 주축이 아니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급의 욕망들이 아이들의 생생한 표정으로 표현된다. 물론 주인공 안은영(정유미)은 퇴마 능력을 지닌 인물로 불길한 기운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인물이 아니지만 인물이 지닌 선함을 강조하지 않아서 좋았다. 보통의 드라마에서 인물이 선하면 'x발'이라는 욕조차 못쓰는 정말 고결한 인물로 나오질 않나. x발을 자주 쓴다고 해서 퇴마능력을 지닌 안은영이 악한 인물로 느껴지기보다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나. 내숭 하나 없이 '도를 아십니까' 드립 치는 부분에서 폭소했다. 드라마 속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선' 보다는 인간이 지닌 '악'의 단면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보여준다. 선과 악, 촌스러운 이분법은 세련된 이 드라마에서는 일도 찾아볼 수 없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도 있지 아니한가. 평범한 인간들이 보여줄 수 있는 '악' 은 '혐오'의 모습으로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 사회에 만연한 '극혐'에 대하여

진지충, 틀딱충, 한남충. 뭐만 하면 충을 붙여서 말하는 게 유행인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충 앞의 의미를 낫잡거나 비하하며 혐오하말은 트렌드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더 나아가 '극혐'이라는 단어는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왜 극호라는 말은 쓰지 않으면서 극혐이라는 단어는 철철철 내뱉는 것일까. 정글 같은 사회에서의 인간들이란 대개 타인을 칭찬하기보다 흠집을 내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기에 '극혐'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극혐을 제일 잘 보여주는 대목이 6화에 나오는 '동성애 비하' '장애인 비하' 부분이었다. 촌스럽게 대사로 극혐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기괴한 비웃음 합창으로 이 사회의 극혐 비웃음을 보여준다. 미친 듯이 웃어대면서 동성애를 비꼬고 장애인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비웃음의 합창은 다리를 절뚝거리는 홍인표(남주혁) 선생님을 비참하게 만든다. '하하하하하하하' 하고 웃어대는 모습은 제일 생생했던 대목이었다. 아마 그 대목을 보면서 찔리는 사람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규정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이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시즌 2를 기다리며, 원작을 읽어보자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을 정말 좋아하는 나로서는 피프티 피플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메디컬 드라마로 나오면 기존 드라마와는 때깔이 다른 드라마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드라마화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혁현'과 '천재소녀' 부분 너무 좋아서 그 부분만 여러 번 읽으며 설렜던 기억이 난다. 그 부분을 보건교사 안은영의 남주혁과 정유미가 연기해도 정말 잘 어울릴 것만 같다. 보건교사 안은영 속 남주혁은 그다지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지만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보여준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지금은 무기력한 캐릭터를 적당한 온도로 표현해 내고 있으며 안은영에 빙의한 정유미의 모습은 그간 홍상수 영화, 로맨스가 필요해, 82년생 김지영 등등에서 보아온 모습과는 또 다르다. 6화에서 안은영(정유미)은 믿었던 언니의 이름이 일광소독 회사의 대표로 쓰여있는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끼고 서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한다. 1,2화가 재난영화 같았다면 3,4화는 성장드라마 같았고 5화는 판타지 만화책을 보는 듯했고 6화는 스릴러 전초전 같았다. 이렇게 저마다 색깔이 달랐는데도 클리프행어 덕분인지 쉴 틈 없이 드라마를 몰아볼 수밖에 없었다. 원작을 얼른 읽어보겠습니다. 빨리 시즌2를 내놓아주세요.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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