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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Sep 29. 2021

유쾌한 타임루프, 영화 <팜 스프링스>

킬링타임용으로 딱인, 재미있는 영화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다면 언제고, 그 이유를 서술하시오.'


대략 이런 뉘앙스의 질문을 받아본 적 있는가. 대면이 아닌 1차 관문 자소서에서 이런 문항을 봤던 적이 있다. 애석하게도 그때는 진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아닌 나를 어필할 수 있는 경험을 녹일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출제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략 유추해보자면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리고 '왜' 바꾸고 싶어 하는지가 궁금하지 않았을까. 대개 '후회'는 긍정적인 뉘앙스보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띄는 단어로 인식되지 아니한가. 사실 우리 인간은 사소한 선택 하나하나를 곱씹을 때도 있고 미래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고민하며 허송세월 하는 영장류 아닌가. 반면, 정말 단순 명료한 사람이라서 후회할 일 하나 없고 미련 없는 사람도 존재하지 아니할까.



사실, 내가 그랬다. 나는 복잡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단순해서 생각보다 지나온 세월에 대한 미련은 없는 편이다(?) 그 문항을 처음 받았을 때, 돌아가고 싶은 때가 없는데 어떡하지? 지어내야 하나? 하고 일차적으로 고민했다. 그래서 한동안 끙끙 앓다가 겨우 제출했던 기억이 있다. 과거로 돌아가서 바꿀 수 있는 타임슬립이 있는 반면, 하루가 매일 반복되는 타임워프도 있다. 제자리에서 롤러코스터 백번 타기와 유사하달까. 다람쥐 쳇바퀴 굴듯 똑같은 일상보다 더 지루할 것만 같다. 반면, 혼자가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이와 함께 타임워프를 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아니한가. 영화 <팜스프링스>는 혼자 타임워프 하던 남자가 결혼식장에서 만난 여자를 타임워프에 끌어들여 함께 타임워프 하다가 여자 덕분에 타임워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다. 엄청 단순한 로그 라인이지만 넷플릭스의 타임워프 물 <러시안 인형처럼>보다 재미있었다. 두 사람은 뻔할 뻔했던 하루하루를 색다르게 칠해가며 춤을 추고 사람들을 곯려주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보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도 반전인 요소가 두 가지나 있다. 하나는 여자의 잠자리 대상이 결혼하는 동생의 예비신랑이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남자는 여자를 처음 꼬신 후, 타임워프에 간 것이 아니라 그전에 숱한 매일을 반복하며 꼬시고 잤다는 점이다. 두 반전 역시 그리 대단한 무언가가 아닐 수 있겠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반전들이 드러나서 무릎을 치면서 봤다.



아무 생각 없이 '오늘만 사는 남자'가 '내일을 원하는 여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떠오르기도 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는 저돌적인 티파니가 팻에게 헤어진 아내와의 재결합을 도와주는 것을 미끼로 댄스 대회에 참가하자는 제안을 하는 것처럼 <팜스프링스>에서도 세라가 양자물리학을 열심히 공부한 끝에 타임 루프망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고 같이 그 망을 탈출하게 된다. 저돌적인 티파니 캐릭터와 온갖 중독에 취한 세라가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듯, <팜스프링스>의 결말도 해피엔딩이다. 두 영화의 핵심은 좌절하던 두 남녀가 어떻게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는지에 대한 과정에 있다. 아담 샌들러를 닮은 남자 주인공은 하는 행동도 <펀치 트렁크 러브>에서의 아담 샌들러와 유사하다. 처음에는 타임루프를 탈출하려던 남자가 체념하고 카르페디엠! 을 외치기까지 왜 남자는 양자물리학을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공부까지는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포기한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던 이유는 이 영화가 결론을 어떻게 맺을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똑같은 하루가 계속 반복되는 타임워프 안에 계속 갇혀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면 흐지부지한 이상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보니 현실로 돌아오는 기발한 무언가가 필요해 보였다. 결론이 이상하면 재미있었던 과정이 김샐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정면 돌파하며 양자물리학의 어려운 대목도 몇 분으로 압축해서 빛이 폭발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을 보면서 '이 정도 결론은 괜찮아.' 하고 관대하게 넘길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재미적인 요소는 ost에도 있다. 특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나오는 Hall&Oates의 When The Morning Comes는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밥 딜런의 shelter from the storm 이 엔딩 크레디트에 흘러나왔던 영화 <세인트 빈센트>(할아버지와 꼬마가 아웅다웅하며 친해졌던 이야기)에서 느꼈던 감정과 유사한 행복한 감정이 들어서 정말 좋았다. 글램핑 가서 불멍을 때리며 스멀스멀 올라오는 감정을 만지작거리는 기분이랄까. 엄청난 의미가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니 킬링타임용으로 강추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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