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다독왕이 될테야
2022 신춘문예 작품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지는 못했고 이효석 문학상 작품집들과 SF단편, 에픽의 단편, 시인의 에세이를 보았다. 백신의 여파인지 무기력함에 골골대다가 아무것도 하기 싫어증에 한창 걸려있다가 다시 무언가를 읽어보겠다는 열정이 뿜 뿜 솟아 단숨에 무언가를 읽어 내려갔다. 읽는 내내 너무나도 기뻤고 팔닥이는 언어들 사이에서 행복했다. 2021년의 막바지와 2022년의 초입에 활자들이 내게 크나큰 기쁨을 줬달까. 훌륭한 작품들 덕분에 눈 호강하며 올해를 힘차게 시작했으니 올해는 좋은 기운이 깃들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좋은 작품은 좋은 기운을 준다.
잘 읽히는 장류진
에픽에 실려있던 <미라와 라라>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숨 가빠할 틈도 없이 휘리릭 넘기며 읽었다. 장류진 작가는 한창 회사 일로 힘들어하고 있을 당시, 모든 회사원의 마음이 이렇지 않겠냐며 창비에 실려있던 글을 건네준 언니 덕분에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접하게 된 작가였다. <달까지 가자>는 아직 읽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읽게 될 책이다. 잘 읽히는 글은 그것만으로도 힘이 있다고 믿기에 장류진 작가의 글에는 수더분하면서도 묵직한 맛이 느껴진달까. '라라'라는 필명을 쓰고 날개를 펴고 싶은 작가 지망생 미라 언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잘하는 것과 잘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나 잘하고 싶은 것을 갈망한다. 라캉은 불가능한 것을 욕망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바꿀 때 엄청난 쾌감을 느끼지 않을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과 성취감의 물성을 느끼며 도전을 외치는 것 아닐까. 소설 나부랭이 따위 누가 읽냐고 화자는 말했지만 그 나부랭이가 누군가에겐 목숨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소중한 무언가 일 수도 있으니까. 팔방미인 톱스타라는 인물 설정은 현실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엄친아를 지칭한다고 생각했다. 엄친아들에게도 결핍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결핍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반짝이는 박상영
202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의 <동경 너머 하와이> 역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일단 동경 너머 하와이라는 제목 자체가 상징하는 바가 좋았고 단편 전체를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제목 치고 센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증의 아버지와 애증의 남자 친구. 놓지도 잡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사이의 두 남자 이야기를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진짜 같은 명품 짜가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한편으론 다 읽고 나서 먹먹했다. 화자의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실타래가 좋은 방향으로 풀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발칙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작가의 재능이 부러웠다.
홍상수 영화 같았던 권여선
2018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의 <모르는 영역>을 보면서 엄청 많이 웃었다. 홍상수 영화 같달까. 어색한 부녀 사이, 동상이몽 급으로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 두 사람. 아버지는 딸아이의 행동에 서운하고 딸아이는 아버지의 행동에 서운해하며 감정이 톱니바퀴 물리듯 겹쳐지면서 끝끝내 서로의 안부를 챙기게 되는 두 사람. '낮달'이라는 은유로 '모르는 영역'을 표현해내는 기교도 좋았고 심드렁한 아버지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마치 홍상수 영화 속 한 장면과도 흡사했다. 강아지가 신발 하나를 물어갔다고 오해하는 대목과 딸이 서먹한 아버지를 위해 버스까지 타고 가서 무언가를 사 오는 대목, 고깃값 때문에 우격다짐하는 대목 등 자꾸만 헛웃음을 유발해내는 일련의 사건들 덕분에 내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평범 속에 비범이 있다면 이 작품이 그렇지 아니할까. 일상 속에서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사건을 예리하게 포착해내 소설로 승화시킨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하루 절반 이상을 보내는 회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웃음폭탄급의 이야기들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사람을 이토록 세밀하게 관찰해내려면 머리가 아파 터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표현이 톡톡 튀는 김금희
종종 콩깍지가 씐 남녀를 보며 저러면 안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있다. 웬 오지랖이냐 하겠지만 <기괴의 탄생> 속 주인공도 애정 하는 선생님의 사랑이 못마땅하다. 제삿날에나 볼 법한 정종을 사들고 가는 주인공의 행동도 우스꽝스러웠고 선생님에 대해 직장 동료에게 상담하는 대목 또한 흥미로웠다. '맥주에 반쯤 젖은 축축한 냅킨 따위가 된듯한 기분'이라는 표현과 카드장처럼 말랐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어서 줄을 그어두었다. 어쩌면 진짜 선생님을 애정 하기에 화자는 소문을 입으로 올려 직격탄을 날릴 수 있지 않았을까. 뼈 때리는 말들도 애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니깐. 리애 씨와 선생님은 서로 알지 못하지만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극 중 예술가의 작품 제목인 <기괴의 탄생>은 결국 두 사람 각자를 기괴하게 바라보고 있는 화자의 관점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천선란의 <사막으로>를 읽었으며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를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스타카토 같은 정지돈의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과 이승우의 <한낮의 시선>을 읽고 있는 중이다. 책으로 흥했으니 올 연말은 책으로 흥하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2022는 더 많은 글들을 읽고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