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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Feb 12. 2022

<모럴센스>에 대한 아쉬움 몇 스푼

모럴 센스는 비추, 눈으로 만든 사람은 강추


서현의 재발견, 모럴 센스


모럴 센스를 개봉하기 전, 예고편만 본 나의 첫인상은 이랬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될 줄 알았다. 물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도 책은 흥했지만 영화는 망작으로 끝나고 말았으나 <모럴 센스>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망한 부분을 메꿔줄 수 있을 줄 알았다. 찬찬히 뜯어보니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기-승-전까지 피치를 올리고 영화는 진행되지만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망가진다. 일단 웹툰이 원작이라서 웹툰과 얼마나 같은지 다른지까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구석구석이 지나치게 인위적이었다. 소재 자체가 선정적이고 마라 맛임에도 불구하고 풀어가는 방식은 순하다. 순한 방식이 문제라기보다 극 중 남주가 자신의 성향을 들키는 부분이라든지 두 사람의 발칙한 행동이 녹음기에 의해 들키는 부분이 전형성을 넘어서서 다소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극의 몰입감을 깨트린다. 더군다나 마지막 엔딩에 사랑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지나치게 생뚱맞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랑에 대한 단상 느낌으로 내레이션이 진행되는데 굳이 필요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117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참고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서현의 연기력 덕분이었다. 서현의 연기력은 드라마 <사생활> 때부터 도드라지게 좋아졌다. 남주의 경우 처음 보는 배우였고 연기가 다소 설익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할 말을 제 때 하는 성격의 여주의 모습이 매일 눈칫밤 먹느라 바쁜 남주(성향자)에게는 주인님으로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남주가 너무 대놓고 자신의 성향을 밝히기보다 어쩌다 들켜서 아슬아슬하게 그렸으면 영화 자체가 더욱 감칠맛 나지 않았을까. 남주가 여주에게 연애는 하기 싫다고 했다가 나중에 연디를 하자고 하는 부분은 감정선이 이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우연히 녹음 볼펜기에 녹음되어 발각되는 대목은 너무 유치하지 아니한가.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드는 영화였다. 발칙한 소재에 비해 로맨틱 코미디라는 틀 안에서 설렘도 주지 못하고 발칙함도 선사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영화였다. 영어 제목은 Love And Leahses고 한국 제목은 <모럴 센스>라서 제목도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차라리 발칙한 그녀 엇비스무리한 제목이었다면 어땠을까. 감독님이 여자 셔서 개인적으로 여자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낼까 궁금했는데 여자 캐릭터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조금 더 과감했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여주 캐릭터가 플레이에 집중하고 남주가 연애 감정이 생기게 되다가 징계를 받을 때 여주가 나서서 남주를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주체성이 부각되지 않았을까.  Lㅇove and Leashes



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

윤성희의 <날마다 만우절>과 함께 작년에 소설가들이 꼽은 1위 소설이었던 <눈으로 만든 사람>을 구매했다. 어떤 면이 소설가들이 1위로 꼽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황정은 작가의 추천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당신의 소설이 나를 어떻게 흔들었는지를 말하게 될까 봐 말할 기회가 영영 없을까 봐 초조했다.' 추천사 문장이 주는 울림을 시작으로 첫 번째 작품인 <보내는 이>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표제작인 <눈으로 만든 사람>보다 <보내는 이>가 더 좋았다. 나이가 들면서 소원해지는 인간관계, 그 와중에 이전의 인간관계와 비슷한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지만 멀어지는 상대의 이야기. 아이를 키우는 동년배 엄마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이질감을 다소 발칙하게 표현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내는 이> 다음으로 좋았던 작품은 <11 월행>이었다. 두 명의 엄마, 두 명의 딸 즉 삼대의 여자가 함께 템플 스테이를 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인데 오랫동안 써 오던 텀블러를 잃어버린 엄마(화자)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최은미 작가의 소설은 문장을 통해 그림이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내가 마치 템플 스테이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생생함은 <점등>의 조계사를 거니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더욱 극대화되었다. 세 번째로 좋았던 <여기 우리 마주>의 경우, 학원 운전사로 일하는 사람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는 이야기를 제삼자 입장에서 그려내면서 이태원 발 코로나 19 이야기를 핍진성 있게 그려냈다. 전반적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중년 여성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육아의 고통을 치러본 이들이라면 나보다 더욱 공감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작가의 소설집은 처음이 아니다. 워낙 유명한 작가님이시고 <너무 한낮의 연애>가 드라마화되었던 것도 보았던 터라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도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표제작 <오직 한 사람의 차지>보다 수록작 <문상>이 더욱 좋았다. 대구로 문상을 가서 희극배우를 만나고 희극배우가 말해주는 전 여자 친구의 이야기에 발끈하는 대목은 다소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문상하면 떠올리게 되는 칙칙한 이미지와 달리, 다소 엉뚱한 상대와 멋진 하루를 보내게 되면서 자신의 과거마저 숙연하게 바라보게 되는 색다른 이야기여서 좋았다. 두 번째로 좋았던 <체스의 모든 것>은 불뚝 성질의 선배와 국화 사이에서 그들의 특별한 관계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선배에게 샘솟는 마음이 흐트러지게 되는 이야기로 사랑에 대한 화자의 단상 부분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가슴 아팠지만 차츰 선배를 향한 마음의 부피를 줄여가는 이야기를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사랑에 급격하게 빠져들어서 하나가 되는 모습과 사랑이 끝난 이후의 상실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낸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사랑에서 대상에 대한 정확한 독해란, 정보의 축적 따위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완수였다.


나는 변화가 완수된 듯 보여도 그것이 지속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울하게 곱씹었다.


표제작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서는 스웨덴 소녀를 흉내 내는 여성에게 묘하게 끌리는 유부남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출판사가 망해서 장인에 식당 냉동고에 책을 잔뜩 쌓아두다가 끝내 불태우게 되는 허무한 이야기와 시간강사를 전전하다가 교수 임용에 실패하는 아내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그 중간에 스웨덴 짝퉁녀의 이야기가 군데군데 등장한다. 그중 제일 특이했던 인물은 스웨덴 짝퉁녀였는데 마치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같단 생각마저 들었다. 반면, 아내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닭의 개수로 남편의 실패를 빗대기까지 했다. 인생을 열기구에 빗대 표현하는 아내의 총체적인 고민은 아직 여전히 존재하는 유리천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인생이란 열기구와 같아서 감상을 얼마나 재빨리 버리느냐에 따라 안정된 기류를 탈 수 있다고. 아무것도 잃으려 하지 않으면 뭘 얻겠어, 하고 충고했다.


어차피 출산 계획은 없지만 그렇게 말하니 자기가 번식장의 무슨 애완종 같은 것이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에이 그렇게 생각하면 심하지라고 하자 기는 심하지, 그래 심하다고 할 줄 알았어,라고 중얼거렸다. 그러고 무릎 위에 자기 머리를 얹고 울면서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뭔지 알아, 물었다. 그런데도 내가 그 대학의 전화를 기다린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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