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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Feb 19. 2022

씁쓸한 장류진 월드와 정세랑 월드의 달콤함

달까지 가자, 시선으로부터, 내가 되는 꿈 다 좋았다.



장류진 - 달까지 가자


이더리움, 이더리움 클래식, 비트코인, 도지 코인에 투자해 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내 투자는 만인이 다 뛰어드는 끝물에 시작된 터라 극 중 인물들처럼 엄청난 수익을 얻지는 못했다. 하루에도 급등락 폭이 너무나도 큰 코인의 세계를 과연 투자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법이라고 실제로 처음 코인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면 하루 종일 폰만 보고 있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기도 한다. 코인에 대해 공부하고 미래 가치를 높게 사는 사람이라면 단기간의 급등락에 의연해질 수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나같이 큰 뜻을 두지 않은 사람이라면 조그마한 급등락에도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한 감정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소설에 그려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세 여자의 캐릭터 설정도 좋았고 일자별로 이들의 심경변화가 그려지고 제주도 여행에서 클라이맥스에 치닿는 부분까지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의외로 상식적인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는 것을. 내 상식의 스탠더드가 너무 높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문장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내 상식 밖의 일들에 어리둥절해지기 마련이다. 사회란 곳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정글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으나 상식 이하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사람 by 사람이라고 회사의 사람이 바뀌니 회사생활의 숨통이 트인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사람이 주는 자극은 어마 무시하다. 부디 내 곁에 상식적인 사람들만 가득 찼으면 좋겠다. 


정세랑 -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월드는 정말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다. 피프티 피플의 '김혁현' 편을 읽으면서 설렘 지수 가득했던 나는 이번 '시선으로부터'를 읽는 내내 심시선 할머니의 글 하나하나를 찬찬히 읽으며 설렜다. 허구의 인물이지만 이 세상에 현존했으면 할 정도로 굉장히 멋있는 인물이었다. 여태까지 본 소설 속 인물 캐릭터 중 탑 3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각 챕터마다 녹여내는 양상은 피프티 피플을 떠올리게 했으며 크리처를 좋아하는 우윤의 캐릭터와 염산 테러를 당한 후 무기력해진 화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내 동생이랑 닮았다고 생각했던 지수 캐릭터도 좋았고 책 덕후인 난정의 캐릭터도 정말 좋았다. 어쩜 이렇게 세세하게 캐릭터와 인물 관계를 짜 낼 수 있을까 놀라웠다. 300페이지 무렵에 다 달았을 때는 정세랑 월드가 끝이 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이후 300페이지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페미니즘과 환경 문제를 캐릭터에 녹여낸 게 인상적이었고 하와이의 풍광을 문장 하나하나에 녹여낸 게 좋았다. 왜 이렇게 좋은 게 많을까. 대하소설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세랑 작가님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이 문장이 정말 좋았다. 어떤 일에 질리지 않는 것도 재능 아닐까. 한 회사에서 한 직무를 오래 맡고 있는 사람들 역시 재능 있는 범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덧, 요즘 책 삼매경에 빠진 나는 한 권의 책을 더 읽었다. 


최진영 - 내가 되는 꿈


누구나 그런 상상을 한 번쯤 해 보지 않는가. 미래의 나가 과거의 나를 찾아가는 상상. 실제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꽤 많이 나왔던 소재지만 소설은 그런 뉘앙스를 편지를 통해 잠깐 보여준다. 유년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의 모습을 교차해가면서 유년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가 얼마나 같고 다른지를 보여준다. 일단 책의 문체가 촘촘하고 잘 읽혀서 정말 좋았다. 이 책은 거의 하루 만에 다 읽어 내려간 책으로 읽고 나서 문장력이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질질 끌지 않고 한 문장과 다음 문장의 이음새가 깔끔하달까. 이혼 위기에 놓여 별거하고 있는 부모님 때문에 외할머니댁에 얹혀살게 되면서 이모의 연애를 알게 되고 이모의 눈물겨운 이별을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는가 하면 하하호호 웃음을 나누던 친구의 가정사를 알게 되고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기도 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소설 곳곳에 심겨 있다. '나'는 끝끝내 회사를 퇴사하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250만 원을 받게 된다. 할머니 유품을 정리하면서 어린 시절 쓰던 물건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스쿨 미투 사건과 직장 내 파벌싸움 등의 이야기가 연상되는 지점도 있었다. 사회문제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내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풀어놓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잘 직조된 직물을 펼쳤을 때의 화사한 기분을 느꼈달까. 작가의 '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유년 시절과 지금의 내 모습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 유년시절은 지극히 평범했고 지금의 나 또한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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