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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Feb 27. 2022

희로애락의 드라마 <서른, 아홉>

시한부 소재의 슬픔과 로맨스의 기쁨

불혹, 마흔을 한 살 앞둔 나이인 서른, 아홉이 되면 어떤 기분일까. 드라마 제목이 <서른, 아홉>이길래 문득 나의 서른아홉을 상상해보았다. 뚜렷한 무언가가 그려지지는 않지만 마흔을 목전에 앞둔, 서른아홉을 스쳐간 많은 지인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공통점은 별 거 없다는 거였다. 다만 이십 대에 비해서는 웬만하면 안정기에 접어들 나이랄까. 조금은 인생이 권태롭고 늘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지루할 나이인 서른아홉에 친구가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면 어떨까. 그 물음에서 드라마 <서른, 아홉>은 시작된다. 그리고 찬영이가 죽는다는 것을 처음부터 아예 알려주며 드라마는 시작한다.


 


찬영(전미도)은 진석(이무생)과 불륜 관계에 놓인 인물로 우유부단하고 미련하기 짝이 없다. 어떤 기사에서는 이 드라마가 불륜을 미화하고 있다고 했지만 불륜을 미화한다기보다는 안타까운 관계를 잘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륜을 미화한다면 미조(손예진)가 그렇게까지 화를 내고 찬영(전미도)에게 이만 정리하라고 채근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불륜 미화보다는 인간 군상의 어떤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보는 편이 훨씬 낫겠다 싶다. 그 와중에 미조(손예진)와 선우(연우진)의 로맨스는 드라마의 달달함을 배가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같이 우연히 자고 쿨하게 헤어졌는데 동업자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작약을 매개로 커플이 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다소 뻔해 보이지만 달달한 선우(연우진) 덕분에 심쿵하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모태솔로 캐릭터인 주희(김지현)의 캐릭터는 허당기가 가득하다. 세 친구는 도원결의를 맺은 관우, 장비, 유비 못지않게 끈끈한 우정을 자랑한다.



 '희'와 '락'만이 가득했던 세 사람 사이에 '노'와 '애'가 끼어들게 된 것은 찬영(전미도)의 시한부 선고 때문이었다. 4화에서 진석(이무생)이 오열하는 장면은 눈시울을 붉히기에 충분했다. 찬영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아이러니는 웬 말인가. 시한부 선고로 인해 미조(손예진)는 팜 스프링스 골프 유학을 하게 되고 찬영 곁에서 즐겁게 시한부 인생을 같이 보내기로 한다. 과연 어떻게 세 사람과 나머지 남자 세 사람이 함께 나머지 시간을 보내게 될지가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서른, 아홉>이 30대 커리어우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청춘시대>는 20대 학생들의 연애와 학업을 다룬 드라마였다. <청춘시대>를 재미있게 본 사람으로서 <서른, 아홉>의 연출자와 <청춘시대>의 연출자가 동일해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 <청춘시대>는 벨 에포크라는 셰어하우스를 같이 쓰는 20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잘 그려내서 호평을 받은 바 있는 드라마다. <서른, 아홉>에 시한부라는 요소가 없었더라도 소소한 30대의 고민과 일상을 잘 그려냈다면 호평을 받을 수 있었을 듯하다.



시한부 선고라는 트리거가 드라마에서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 만큼, 여태까지 드라마들에서 보아온 슬픈 시한부 이야기 대신에 이왕 죽는다면 남은 생에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리라 마음먹은 주인공이 어떻게 남은 생을 마감하게 되는지가 생생하게 그려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 모두 슬플 땐 슬프고 기쁠 땐 기쁜 연기가 자연스러워서 몰입도도 높다. 어떤 기사에서는 찬영(전미도)의 연기가 과하며 캐릭터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보이시한 매력과 쿨한 성격의 캐릭터라고 본다면 몰입이 전혀 깨지지 않는다. 여자들의 우정, 워맨스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이기에 세 명의 캐릭터를 조금씩 다르게 설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셋 다 캐릭터가 너무 비슷하면 재미없지 않았을까.


오래간만에 공감 백배에 희로애락이 모두 느껴지는 드라마를 보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현재는 기쁨과 슬픔이 섞여있는 상태로 앞으로 슬픔이 극대화되는 이야기로 전개되겠지만 간간히 보이는 일상의 기쁨과 로맨스의 기쁨 덕분에 시한부의 슬픔이 최소화되고 있다. 찬영과 미조, 주희 세 명의 여자가 누구보다도 행복한 서른, 아홉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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