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서체맛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처음 드라마 제목을 들었을 때 '해방'이라는 단어 때문에 일제강점기 시대를 다루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드라마는 요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견딜 수 없이 촌스러운 삼 남매의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행복 소생 기란다. 우리는 일상에서 '해방'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지 않는다. 드라마 1화 후반부 무렵에는 '해방'이라는 단어 못지않게 자주 쓰지 않는 단어 '추앙' 이 등장한다. 염미정(김지원)이 구 씨(손석구)에게 나를 추앙하라고 하는 이름하야 추앙 씬이 등장한다. 추앙 씬은 2화에서 더욱 자세히 풀어지고 구 씨(손석구)는 실제로 극 중에서 추앙이라는 단어에 대해 검색해본다. 추앙이란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이라는 뜻이다. 현재 8화까지 방영된 드라마에서 구 씨(손석구)와 염미정(김지원)은 추앙하라고 울부짖던 일방적인 사이가 아닌 서로 추앙하는 양방향 교류가 있는 사이가 되었다. 보통 드라마에 나오는 썸 타는 남녀관계와는 사뭇 다르고 낯설다. 두 사람은 같이 데이트를 하면서도 크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데 두 사람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염미정(김지원)이다. 미정(김지원)은 회사에서 내향인에 가깝다. 요즘 유행하는 MBTI에 따르면, 파워 I인 셈이다. 조용조용하면서 자신의 할 일만 도맡아 하며 동호회 가입이 거의 필수인 회사에서 집이 멀다는 이유로 동호회를 하지 않아 왔다. 물론 지금은 '해방 클럽'을 만들어서 '해방 일지'를 작성해서 서로의 속마음을 공유한다.
조용조용한 염미정(김지원)과 달리 언니 염기정(이엘)은 금사빠, 금사식이다. 단연코 아무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부해왔지만 자신에게 고백하는 사람은 성에 차지 않고 상대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의미부여를 하며 혼자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어가며 고백은 못해온 사람이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조언한다. 나처럼 사랑을 갈망하지 말라고. 염기정(이엘)과 달리, 지현아(전혜진)는 고백도 우아하게 거절하고 사랑도 수십 번씩 해온 사랑의 베테랑이다. 현아(전혜진)가 기정(이엘)에게 너 자신을 알라며 사랑의 눈높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은 대사가 압권이다. 70인 사람이 30인 사람을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하냐며 말하는 대목은 실제 현실에서 연애 관련 조언을 해주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다. 이처럼 드라마는 핍진성이 짙다. 삼 남매 중 속 시원하게 자신의 말을 속사포로 해대는 염창희(이민기)도 명대사 제조기다. 들이대는 여자에게 말한다. 넌 날 애정 하는구나. 알면서도 사랑을 선뜻 시작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핍진성이 짙은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구 씨(손석구)의 정체는 미스터리다. 조직폭력배 같은 느낌이 물씬 나지만 마초 미 뿜 뿜 하면서도 미정(김지원)을 무심하게 챙겨주는 구 씨(손석구)의 모습에서 사랑 냄새가 물씬 느껴진다. 이 드라마는 사랑 대신 '추앙'이라는 단어를 쓰고 좋아한다는 단어 대신에 '애정'과 '갈망'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그 나름대로 궁서체 맛이 있는 드라마다. 특히, 밥상머리 씬에서는 긴장하게 된다. 잔잔한 일상에서 서로가 할 이야기를 꾹 누르고 있다가 누군가 툭 하고 뱉으면 톡 하고 받아치며 긴장감을 형성하는 밥상머리 신을 보고 있을 때면 같이 끼어서 밥을 먹고 싶을 정도다. 앞으로 드라마 전개에 있어 구 씨(손석구)의 정체가 어떤 식으로 밝혀지고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지도 궁금하지만 미정(김지원)이 해방 클럽에서 어떤 해방 일지를 쓸 지도 궁금하다. 해방 일지를 쓰면서 명대사가 우두두 쏟아지지 않을까. 사랑하면 오히려 심장이 빨리 뛰는 게 아니라 느리게 뛴다는 드라마 속 대사가 맘에 와닿았듯이 8화 이후로 전개되는 드라마에서도 명대사가 우두두 쏟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