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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Jun 01. 2022

우연 속 딜레마를 그린 영화 <우연과 상상>

우연과 상상, 제목이 정말 신박하지 아니한가.



영화 <우연과 상상>의 감독은 하마구치 류스케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드라이브 마이카>로 칸느 영화제 각본상,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올해 초에 <드라이브 마이카>를 접한 나는 17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속에서 안톤 체호프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향기를 느끼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무렵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원작인 하루키의 소설까지 찾아 읽어가며 영화와 비교해 보면서 영화가 주는 감흥을 여러 번 곱씹었다. 우연히 만난 연출가 가 후쿠와 드라이버 미사키는 차 안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들여다보게 된다. 단편 소설 <드라이브 마이카>보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는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이 참여한 연극(수화까지 포함)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더욱 섬세하게 그려낸다. 연극의 막이 오르고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몰려온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전작 <아사코> 역시 시바사키 토모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이 영화는 '사랑의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사랑과 닮은 사람을 사랑하여 결혼까지 앞둔 상황에서 나타난 첫사랑을 당신은 선택하겠는가. 극 중에서 아사코는 흔들려서 첫사랑 바쿠를 따라나서지만 끝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첫사랑과 닮은 료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료헤이에게 돌아간다. 이미 신뢰가 산산조각 난 상태지만 영화는 아사코가 료헤이와 함께 살게 되는 것으로 끝난다.  


<우연과 상상>은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아사코>에서 느낄 수 있는 딜레마 모두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우연과 상상>은 베를린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3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줌인 줌아웃이라는 독특한 영화 방식은 홍상수 영화를 연상케 하지만 시니컬한 홍상수 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친한 친구가 자신의 전 남자 친구와 '마법'이라 일컫는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전 남자 친구를 찾아가서 감정을 쏟아붓는 이야기며 두 번째 이야기는 교수가 쓴 외설스러운 소설을 교수 앞에서 낭독하며 교수를 유혹하는 데에 실패한 유부녀가 유혹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남편에게 잘못 보내 이혼하게 되는 이야기며 세 번째 이야기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20년 전 동창인 줄 알았던 이의 이름도 모르면서 자신의 집에 들인 주부가 역할 놀이를 하며 각자가 그리던 친구에게 못다 한 말을 각기 전하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세 이야기 모두에 우연이 내포되어 있다. 세 이야기의 제목은 각기 '마법', '뭄을 열어둔 채로' '다시 한번'이다. 두 번째 이야기 '몸을 열어둔 채로'는 단편소설을 눈으로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세 번째 이야기는 연극 한 편을 보는 듯했다. 세 이야기 모두 '드라이브 마이카'처럼 두 사람 사이의 오가는 대화가 전체 서사를 이끌어간다. 첫 번째 이야기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내 감정이 미련임을 알고 친한 친구와의 마법 같은 사랑을 응원할 것이고 두 번째 이야기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문을 열어둔 채로 애초에 책 잡힐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 같고 세 번째 이야기와 같은 상황이라면 응원과 치유, 연대 모두가 이루어지는 상황이라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막장 드라마에서 우연이 남발되면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지만 작정하고 '우연'이라는 테마에 대해 다룬 이 영화는 '하이퍼 리얼리즘'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 하이퍼 리얼리즘을 뚜렷하게 그려낸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구 씨(손석구)가 우연히 산포 마을에 정착하여 '추앙'을 통해 '구원'받게 되었듯이 영화 <우연과 상상> 속 인물들은 우연히 벌어진 상황 속에서 각자의 선택으로 홀로서기를 개척해 나간다.


이 영화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우연은 드라마로 만들기도 어렵지만 일상에 흔한 것이기도 하다. 우연이 있는 것이 이 세상의 리얼리티이고, 반대로 말하면 이 세계를 그리는 것은 우연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우연으로 넘쳐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준비된 우연은 필연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잘 짜인 우연으로 가득한 영화 <우연과 상상>은 필연적으로 스며들 수밖에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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