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월드는 유사 가족 이야기로 가득했고 홍상수 월드는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의 향연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외국 배우들과 손잡고 찍은 두 번째 영화 <브로커>를 통해서 송강호는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거머쥐었다. 두 거장의 필모그래피를 꾸준히 훑어왔던 나로서는 두 작품 모두에 거는 기대가 상당했다. 두 감독의 필모 중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경우, <어느 가족>의 클라이맥스를 보며 엉엉 울었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면서도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지 하며 감탄했다. 홍상수 감독 작품의 경우 개인적으로 <하하하>와 <북촌방향>을 좋아하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를 보면서는 그의 철학적인 관점에 감탄했으며 자신의 페르소나 격 배우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급발진하며 쏟아내는 방식에 탄복해왔다.
***********스포 주의*************
두 감독 영화를 사랑해 온 나는 이번 두 영화를 보면서 맹숭맹숭한 감정이 들었다. 특히 <브로커>는 얼개가 제대로 들어맞지 않은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베이비박스 앞에 아기를 버리고 두고 간 아이유가 뒤늦게 아이를 찾으러 왔다가 브로커인 강동원과 송강호 무리에 합류하게 되고 이를 뒤쫓는 형사로 분한 배두나와 이주영은 중개인을 잡기 위해 미끼를 던지고 급기야는 살인을 저지른 아이유에게 딜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문제는 인물들이 평면적이고 한없이 착하다는 점이다. 한없이 착한 인물들로만 구성이 되어도 영화가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지만 이번 영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의 묘미는 '유사 가족 형태'를 찾아가는 것에 있다고 보아왔다. 그런데 과연 이번 영화에서 중개인 일당과 함께하는 진짜 엄마 아이유, 나중에 아이를 도맡아준 형사 배두나 무리를 하나의 유사가족으로 볼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물론 영화상으로는 끄덕여지는 면도 있다. 하지만 너무 억지스럽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팔로우 업하던 형사 배두나와 이주영이 중얼거리는 대사 중에는 '아이의 불행을 바라는 게 꼭 우리 같다.'라는 깨달음을 암시하는 대사가 있다. 중개인 잡는 데에 혈안이 되어 물불 안 가리는 형사들보다 아이를 사고파는 브로커들이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러니함이 극대화되는 대목인데 이를 한 줄 대사로 처리하니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유와 중개인 일당이 같이 왜 돌아다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세 사람 사이에는 큰 긴장감도 없다. 처음에 세 사람이 같이 아웅다웅할 때 더 큰 갈등이 있었더라면 맹숭맹숭한 영화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월미도에 놀러 가서 공중관람차에서 눈을 가리는 대목이라든지 모텔 방에 누워서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대목 역시 억지 감동을 유도하는 듯했다. 억지와 자연스러움은 한 끗 차이인데 구성 역시 단조롭다 보니 감동이 배가되어야 할 대목에서 감동받지 못하고 읭 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어느 가족>을 보며 유사가족에 대해 치밀하게 고민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찬사를 보냈던 나로서는 이번 영화가 너무나도 아쉬운 영화로 기록된다.
<소설가의 영화> 역시 맹숭맹숭하긴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글이 안 써지는 소설가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다가 여배우를 만나게 되는데 그 여배우에게 영화 촬영을 제안하고 실제로 영화를 촬영하게 되는 지극히 간단한 이야기다. 홍상수 감독은 늘 그래 왔듯이 이혜영 배우를 페르소나 삼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여과 없이 다 털어놓는다. 여배우에게 아깝다고 하는데 뭐가 아깝냐고, 다 큰 어른인데 아까울 게 뭐가 있냐고 급발진하는 대목은 대중의 김민희에 대한 시선에 대한 항변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혜영 배우와 김민희가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를 먹는 장면에서 조그마한 아이가 빤히 들여다보는 대목 역시 대중의 관음증적 시선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날은 아직 밝지만 날은 곧 저문다. 날이 좋을 때 실컷 다녀보자.'라는 문장을 수화로 표현해달라고 말하는 대목은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를 연상케 한다. 수화라는 장치를 굳이 왜 썼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갑툭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그 수화를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고 본다. 평양냉면같이 심심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대목에 있다. 소설가가 찍은 영화로 보이는 김민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컬러 영상 속 김민희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렇게 이쁜 순간을 왜 흑백으로 찍냐는 대목 다음으로 컬러 영상이 나오는데 홍상수 감독의 김민희에 대한 거룩한 애정이 한순간에 와닿는다. 뿐만 아니라 영화 곳곳에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관이 잘 드러나 있다. 다큐스럽지는 않되 인물을 먼저 정해놓고 그 인물이 일상에서 겪을 법한 일들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 그간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구현해온 그의 영화관은 기주봉과의 술자리에서 소설가가 나누는 대화에서 드러난다. 이야기는 중요치 않다고, 이야기보다 인물을 정해놓고 그 인물에 포커싱 해서 전개하는 그의 영화관은 <소설가의 영화> 속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자기 복제라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지만 <인트로덕션>이 <북촌방향>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조금씩 결을 달리한다. 남녀상열지사에 포커싱 해서 영화를 찍던 홍상수 감독은 언젠가부터 자신의 로맨틱한 사랑관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브로커>보다 <소설가의 영화>가 더욱 좋았다. 두 영화 다 평양냉면스럽지만 <소설가의 영화>에는 마지막의 시큼함이 양념으로 느껴지지만 <브로커>에서 양념처럼 느껴지는 대목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에 한 표를 보내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