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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Jun 26. 2022

주인공의 파멸을 예상하면서도 보게 될 드라마 <안나>

디테일한 캐릭터 설정 다음 서사는 어떻게 진행될까


쿠팡 플레이에서 <안나> 1,2화 공개되었다. 처음 <안나>를 보았을 때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떠올랐으나 원작은 정한아의 <친밀한 이방인>으로 안나 카레니나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원작을 읽어보고 싶어서 동네 도서관에 들렀는데 이미 대출되어서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나는 드라마 <안나>를 보면서 신정아 사건이 떠올랐다. 2007년 당시 동국대 교수였던 신정아 씨가 학력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난 사건은 신 씨와 관련된 미술계, 대학가, 불교계, 정치 스캔들로 번져 회자가 된 바 있다. 신정아 씨는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추앙받았지만 학력 위조 사건으로 인해 한순간에 추락하게 된다. 신 씨는 이후 <4001>이라는 자신의 수인번호를 딴 자전적인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정아 사건이 원작을 드라마화하면서 모티프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원작에서는 피아노 학원 선생을 하다가 음대 교수, 의사 면허 위조까지 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스포 주의********



드라마 <안나>에서 극 중 인물 유미는 2화에서 '안나'로 개명한다. 드라마는 첫 씬에서 차 사고가 난 후, 홀연히 걸어가는 '안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안나의 '파멸'을 일찌감치 예고한 후, 안나의 유년시절부터 2010년대까지 안나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청각 장애인인 어머니와 세탁소를 하는 아버지를 둔 유미는 고등학생 때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했으나 음악 선생님과의 교제가 들키고 그로 인해 서울로 강제전학을 당하게 된다. 같은 하숙생인 교지편집부 이대생 언니와 인연이 닿은 후, 미국에서 오래 생활했다는 작은 거짓말을 시작으로 교지편집부 연합 모임에서 알게 된 남자와 사귀게 되고 유학까지 떠나려고 한 유미는 극성맞은 남자 친구 엄마의 폭로로 정체가 탄로 나게 된다.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게 되자 유미는 편의점, 백화점 아르바이트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학력 무관 채용공고를 보게 되고 '안나'가 있는 집에 안나의 개인 비서로 들어가게 된다. 파티걸인 안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유미는 '안나'의 여권 갱신 요구와 안나 아버지의 막말을 듣다 참다못해 그 집을 뛰쳐나오게 된다.


유미는 사소한 거짓말의 시발점이 되었던 하숙생 교지편집부 언니에게 다시 연락을 하고 개명 후, 그 언니 인맥 덕분에 유학원 강사로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의 인연으로 대학의 평생교육원 강의를 맡게 되고 그 인연의 꼬리가 지인 소개팅으로 이어져 결혼까지 하게 된다. 가짜 부모, 가짜 하객을 동원한 결혼에 성공한 안나는 품위 있는 그녀로 살아가다가 2화 마지막에 이르러 진짜 '안나'와 엘리베이터에서 조우하게 된다. 총 6부작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의 3분의 1까지 본 나의 소감은 5점 만점에 5점을 주고 싶을 정도로 캐릭터 빌드업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유미 캐릭터를 수지는 담담하게 연기해 내고 있다. 리플리 증후군이란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말한다. 미국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영화 <리플리>로 영화화된 바 있다. 영화 <리플리>에서 맷 데이먼이 부자들의 방식을 체득하면서 부자들을 흉내 내고 거짓 망을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모습을 아주 잘 소화해낸 것처럼 수지는 담담함을 유지하면서도 '안나'의 미묘한 특징을 포착해내서는 그녀처럼 연기한다. 수지가 연기한 '유미' 이자 '안나'인 극 중 인물은 결국 파멸하고 말 것이다. 들통이 나서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 결론을 알면서도 이 드라마를 보고자 하는 이유는 극 중 인물이 어떻게 들통이 나는 서사를 가지게 될지가 궁금해서다.


드라마 <미스티>가 잘 나가던 앵커 고혜란 앞에 전 연인 케빈 리가 나타나 의문스러운 사건으로 죽게 되고 혜란이 용의자가 되는 것을 초반부에 탁 내세워서 매 회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드라마 <안나>는 안나가 진짜 안 나와 조우했을 때 어떤 행동을 하고 거짓말에 거짓말을 일삼다가 어떻게 곤경을 헤쳐나가다가 파멸하게 되는지 정말 궁금하게 만든다. 물론 <미스티>는 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질 때 읭 했지만 드라마 <안나>는 거짓말을 일삼는 안나가 안쓰럽기도 하고 대담하기도 해서 그녀가 탄로 나지 않길 원하는 마음 반, 그녀의 예견된 파멸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 반이 섞여서 미묘한 감정으로 극 중 인물을 바라보게 될 듯하다. 잘 나가는 IT 졸부 남편의 출세욕이 큰 상황이라 더더욱 유미는 자신의 정체는 탄로 날 가능성이 높지만 그녀는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대담함을 가지고 있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남편이 아내의 거짓을 알고 충격을 받고 어떻게 파멸되고 진짜 '안나'는 자신의 모습으로 위장한 유미의 모습에 어떻게 대응하게 될지도 궁금하다.



우리도 인간인지라 누구나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인성검사 항문 중 '나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와 같은 문항에 yes를 하게 되면 솔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문제는 거짓말의 정도에 있는 듯하다. 예쁘지 않아도 '오늘 정말 예쁘세요'와 같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거짓말과 학벌, 직업 등 명백한 사실을 완전히 거짓으로 속이는 것 차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 아니한가. 하얀 거짓말은 때론 필요할 때가 있지만 빨간 거짓말은 결국 파멸을 불러일으키고 말 것이다.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는 인간의 심리의 기저에는 열등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한 끗 차이란 말이 있지 아니한가. 열등감 때문에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다가 거짓말에 거짓말을 하는 동안 가짜 우월감을 느끼다가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게 거듭된 거짓말의 예견된 결말 아닐까. 심리학자 아들러는 열등감이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밝힌 바 있는데 열등감이 모든 병리현상의 일차적 원인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아들러는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마음을 '권력에의 의지'라고 불렀다.  모든 사람에게 열등감이 존재하지만 열등감 자체는 나쁜 게 아니며 열등감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 아들러는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지는 것은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라고 보았다.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져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극 중 인물 '안나'는 건강한 열등감을 가질 기회가 분명 있었다. 건강한 열등감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우리 역시 자기중심을 잡고 지금보다 더 나은 스스로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 모두 건강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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