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인 듯 별일 아닌 일
시각적인 사건 하나
허벅지 쪽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한 번은 핫팬츠를 입고 나갔는데 누군가가 허벅지 쪽의 멍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불쾌하다는 뉘앙스를 주었는데도 자꾸만 쳐다봤다. 내가 맞았다고 생각했을까. 누군가한테 맞았다. 정말 모르는 사람한테 맞았고 사과도 받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은 수영장에서 벌어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유형을 하고 있었는데(아쿠아로빅 시간이어서 이 때는 레인을 하나밖에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답답하다.) 맞은편에서 평형을 하던 남자가 내 허벅지를 푹 하고 찼다. 당연히 고의는 없었겠지만 누군가의 허벅지를 찼다는 느낌이 있으면 멈춰 서서 돌아보거나 멋쩍어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멈춰 서서 뒤돌아봤지만 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개구리 다리를 폈다 접었다 하고 있었다. 눈이 나빠서 수영장에서는 흐리멍덩하게 보여서 사실 상대가 누군지도 몰랐을 테지만 뒤돌아보고 머쓱해했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일이다. 기분이 나빴지만 고의는 아니겠거니 하고 넘겼다. 그리고 그다음 날, 허벅지에 든 멍을 발견했다. 얼마나 세게 찼으면 내 허벅지에 멍이 들까. 멍이 하루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 툭툭 건들지 않으면 아무 느낌이 없지만 너무나도 흉측하다.
후각적인 사건 하나
비가 오는 날, 지하철에서 벌어진 일이다. 킁킁. 이상한 냄새가 났다. 내 양 옆에 탄 사람의 냄샌가 킁킁 한쪽은 헤드뱅잉을 하면서 졸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무심하게 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냄새의 근원이 너무 궁금했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다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곧 옆사람이 내렸고 다시 내 옆에 누군가가 앉았다. 콩나물을 꺼내더니 귀에 꽂다가 그 여자도 좌우를 살피며 킁킁댔다. 역시 나만 느끼고 있는 냄새가 아니었나 보다. 오분을 앉아있던 여자는 못 참겠다는 듯이 일어났다. 오래된 장롱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했고 우산이 다 마르기 직전의 냄새 기도 했으며 덜 마른빨래 냄새 같기도 했다. 사실 나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앉을자리가 없어서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왼쪽의 남자는 졸고 있다가 헤드뱅잉을 더욱 격하게 했다. 다음 역에서 또 다른 아줌마가 탔다. 짐을 양손에 들고 탄 아줌마는 자리에 앉다가 다시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쯤 되자 나는 내게서 나는 냄샌가 하고 의문을 가졌다. 킁킁. 동생한테서 빌린 에코백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니 가방에서 똥냄새 남.'
정말 진지하게 동생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보냈다. 동생은 키읔이 가득한 문자를 보내며 나보고 미쳤다고 했다. 나는 정말 그 순간, 진지했는데 정말 소똥 냄새를 느꼈는데! 자신이 아끼는 스누피 에코백인데 왜 허락도 받지 않고 에코백을 가지고 갔냐고 뭐라 했다. 구구절절 핑계를 대며 다시 한번 더 말했다.
'이거 오래된 거 아님? 진짜 똥냄새 남.'
내 동생은 웃겨 죽겠다고 했고 격하게 똥냄새가 날 리 없다고 주장했다.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이라서 그럴 리 없다고 했다. 나는 그 가방을 매트리스 밑에서 발견했는데 정말인가 의문이 들었다. 최근 매트리스를 교체하면서 시트를 벗긴 후, 오래된 매트리스 밑에 그 에코백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나는 냄새일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나는 당장의 이 흉물스러운 냄새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서 있으니 냄새가 덜 나는 듯했다. 내 편리를 위해 백팩이 아닌 에코백을 들고 이동했는데 이런 냄새 봉변을 당할 줄이야! 그것도 범인이 나였다니!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데 상대가 여기서 냄새를 맡을까 봐 걱정되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에서는 이상하게 그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바람에 비릿한 냄새가 실려 날아간 걸까. 미스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