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헤이즐> 조쉬 분 감독의 영화 <스턱 인 러브>
영화 <스턱 인 러브>를 보기 전에, 올해 내가 본 영화 중 최고의 영화는 <먼 훗날 우리>였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들이 있을 터인데, 그 사랑이 첫사랑이라면, 혹은 아주 어릴 때라면 더 아련하게 기억이 날 것이다. 내게도 미련이 있었던 어릴 적의 사랑이 있었는데 그 사랑으로 인해 몇 년을 골골댔던 적이 있다. 그때는 쉽게 잊을 수 없을 사랑일 줄 알았는데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고 어느샌가 잊히더라. <먼 훗날 우리>가 좋았던 이유는 현실적이어서였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가 훗날 중년이 되어서는 비행기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설정, 다소 뻔할 수 있지만 영화는 원작답게 남녀의 감정선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특히 불어 터진 라면과 게임에만 빠져있는 남자 주인공을 아련히 바라보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 지하철 문이 닫히고 서로 이제 다가갈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리는 두 남녀. 영화 구석구석 장면들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스턱 인 러브>를 보고서는 눈물 하나 흘리지 않았다. 아련하지도 않았다. 따뜻했다. 난 따뜻한 가족영화, 드라마 장르의 영화를 정말 좋아라 한다. <스턱 인 러브>는 네 명의 가족 구성원의 사랑 이야기다. 성장기 청소년의 풋사랑과 시니컬한 대학생의 방어적인 사랑이야기며 정으로 똘똘 뭉친 어느 부부의 사랑 이야기다. 그 사랑들 사이에는 책, 작가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데 그래서 더 깊이 있게 느껴진다. 결론도 마음에 든다. 아빠도 작가, 누나도 작가, 동생도 작가라니 이런 판타스틱한 작가 가족이 어디 있나! 특히 릴리 콜린스가 맡은 역할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는데 사랑을 두려워하는 그녀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로건 레먼! 이런 남자를 어찌 아니 좋아할 수 있겠나!
왓차 추천으로 우연히 보게 된 영화였는데 5점 잘 안 주는 내가 5점을 줬다. 내 예상 평점은 3.5점이었는데 예상 평점을 훨씬 뛰어넘고 말았다. 눈이 즐거웠던 이유는 남자 배우보다 여자 배우가 너무 예뻐서였다. 릴리 콜린스보다 제니퍼 코넬리가 예뻐서 감탄하면서 봤다. 릴리 콜린스가 명대사를 많이 던졌던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영화감독이 <안녕, 헤이즐>의 조쉬 분 감독이었다. 어쩐지 센스 있는 연출 하며 센스 있는 ost 하며 너무 좋아서 한동안 내내 <스턱 인 러브> OST 중 Elliott Smiths의 Between The Bars랑 Edward Sharpe&The Magnetic Zeros의 Home만 들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떨렸다. 어떤 느낌이었냐면 스물두 살 때, <High Fidelity>를 보고 나서 The Smiths의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만 주야장천 들었을 때의 그 아련한 느낌! 소중한 보물을 발견했어! 유레카! 이런 느낌! 설레서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 이렇게 좋은 영화가 왜 묻혀버린 걸까. 물론 결론 부분이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해피엔딩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해피엔딩론자인 내 입장에서는 썩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 레건 로먼도 매력적이지만 사실, 나는 이 중 아빠 역 나온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창문으로 스토커 짓 하는 것도 귀여웠고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소신 있는 면도 좋았고 작가란 점도 사람이 깊어 보였달까.
"세상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어. 안쓰러운 현실주의자와 낭만주의자. 현실주의자는 비교를 하고 낭만주의자는 신에게 설득당하지. 지금 그 사람만이 함께할 유일한 사람이라고."
나는 여전히 현실주의자보다는 낭만주의자다. 옛날에는 99프로 낭만주의자였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 옅어진 듯하지만 내 친구 말에 의하면 나는 아직까지도 운명을 믿고 있고,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이브한 애다.
"우리가 내고 있는 인간적인 소음이 들렸다. 방이 어두워졌는데도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난 깔끔하게 글을 잘 쓰는 레이먼드 카버를 정말 좋아라 하는데 그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역시 정말 좋아라 하는데 그중에 이 문장이 있다. 심장박동 소리를 인간적인 소음이라고 표현하다니 정말 천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