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층간소음, 예의와 불편 사이

아파트 공화국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예의

by 아보카도


엄마, 아빠 집 엘리베이터에 하루만에 두 개의 A4용지가 붙었다. 첫 번째는 깔끔하게 타이핑한 종이였고 두 번째는 수기로 직접 작성한 종이였다. 두 종이는 아직 입주가 완료되지 않은 엘리베이터 곳곳에 붙어있는 전단지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 아무리 봐도 눈에 안 띄던 광고들과 달리 분노를 눌러가며 쓴 이야기들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원룸살이를 하면서 옆집의 소음 때문에 짜증 났던 적이 있던 터라 남일 같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의아하기도 했다.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한가로운 대낮에 피아노 소리가 너무 심하게 들리니 피아노 레슨 하시는 집 같기도 한데 하루 종일 피아노 소리 들으려니까 힘들다. 피아노 ' 량' 밑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내가 만약 당사자라면 이 글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까. 쪽팔리면서 한편으로는 차라리 직접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서운함이 들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직접 말하기 힘들어서 붙여놓았을 수도 있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쪽팔리고 낯 뜨겁지 않았을까. 두 번째 종이는 양호했다. 공사하실 때는 미리 양해를 구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그야말로 정중한 글이었다. 누구나 납득 가능한 글.


나 역시 원룸살이를 하면서 층간소음을 여러 번 겪었으나 나는 단 한 번도 글을 적어둔 적은 없었다. 타인의 소리에 구애받으면서까지 잠을 설치는 과가 아니기도 했고 한 번은 술만 먹으면 고성방가를 지르고 여자 친구를 집 밖으로 내쫓기도 하는 괴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오들오들 떤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더 조심조심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만큼 소리에 예민한 사람도 분명 많을 것이다. 내 친구의 경우, 옆집에서 내내 심하게 떠들길래 초인종을 누르고 가서 말한 적도 있다고 했고 포스트잇을 집 앞에 붙여놓은 적도 있다고 했다. 물론 내 친구 역시 상대가 괴팍한 사람이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한 번 너무 심할 때는 관리인한테 너무 힘들다고 토로를 한 적이 있는데 관리인한테 말해도 고쳐지지 않아서 내가 이사 가는 방법밖에 없겠구나 하고 체념했던 적이 있다.



소리에 대한 반응은 인간 개개인 저마다 상대적이라서 사실 누구 탓을 하기도 힘든 애매모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아노의 경우,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던 나 역시 대낮에 피아노를 친 적이 많아서 혹시 어릴 때 내가 피아노 칠 때도 누가 기분이 나빴던 거 아닐까 하는 자기반성의 시간까지 가졌다. 피아노를 치거나 바이올린을 켜는 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가끔 기분이 좋을 때도 있었는데 그 글을 써 놓은 분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신의 집 아이의 피아노 소리 때문에 공개적인 망신을 당한 아줌마네 집에서 이제 그 아이는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 아마 엄두도 못 낼 것이다. 한창 피아노를 치고 싶을 나이에, 한밤중도 아닌데 대낮에 피아노를 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이라니 너무나도 서글퍼졌다. 나의 옛 이웃들에게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아파트 공화국에서 층간소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공론화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쿵저러쿵해도 당사자가 되어 층간소음을 당해 보지 않으면 그 기분이 어떤지는 정말 모를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두 종이를 보고 나서 나는 성큼성큼 걷지 않고 사뿐사뿐 걷기 위해 노력 중이다. 참 어려운 일 같다. 예의를 지키면서 상대를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상에서 자유라는 권리를 누리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예상치 못한 울림, 심장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