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김지영이었고 그녀도 김지영이다.
우리 가족 중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제일 늦게 본 건 나였다. 보고 나랑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해 보자는 엄마의 채근은 이불에 파묻혀 있던 나를 영화관에 가게 했다. 만날 말과 머리로만 양성평등을 외치고 '가시내'라는 말을 지나가는 아저씨가 쓰면 '가사나이'라는 말을 왜 쓸까 하고 속으로 반문을 하며 누군가 성인지 감수성 떨어지는 발언을 하면 눈살을 찌푸리던 나였다. 정작 나서서 "왜 그러세요?"라고는 할 줄 몰랐던 어쩌면 비겁한 페미니스트. 대학생 때 어떤 남자가 페미니즘을 공부해 보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사람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 입으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공언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언론에 오르내리거나 하는 사람 이외에 일상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을 말이다. 하긴, 오죽하면 페미니즘 책 중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이 있을까.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지나친 남성 중심주의에서 탈피하여 성비 불균형이 아닌 성비 균형 사회, 남녀가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자고 외치는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가 남성중심주의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거꾸로 가는 남자'라는 영화와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을 꼭 보길 바란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첫째 딸 은영이 셋째 아들 지석에게 말하듯이 은연중에 딸 부잣집 막내아들은 '우리 아들'로 커 왔던 것이 현실이다. 그 혜택이 너무 익숙해서 혜택이라고 생각 못할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보는 내내 엄청 울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너무 서러워서 울었다. 정작 나는 자라오면서 성차별을 당한 게 많이 없었지만 그 성차별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차별도 있을 거라 생각하면 무수히 많을 터였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 역시 서른의 여자기 때문에 하는 고민들이 대부분이다. 서른의 남자였으면 내가 이런 고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울었다. 그리고 엄마와 엄마의 엄마가 생각나서 울었다. 우리 엄마도 내가 어릴 때 명절 때마다 군소리 없이 네네 하며 설거지를 하고 음식을 했으며 그러고 나서 명절증후군이 와서는 힘들어했던 모습들이 내 머릿속에 있었다. 누군가가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명절 풍경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실제로 해외여행도 많이 가는 추세고 명절에 음식을 주문해서 하는 집도 많이 늘어났다. 누군가의 핀잔에도, 좋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고 외쳤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남주 작가의 책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나서 <현남 오빠에게>를 읽었다. 정세랑 작가의 <옥상에서 만나요>의 웨딩드레스 44에 실린 여성들의 고충 못지않게 <현남 오빠에게>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겪을 법한 감정들이 꾹꾹 담겨 있었다. '오빠'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있어서 연상을 만날 때 힘들었던 적이 있다. '오빠'라는 단어가 별거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특히 자기 입으로 '오빠가 이거 했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 떨어졌던 적도 있다. 왜 그렇게 민감하게 구느냐고 '오빠'는 '형'이나 '누나' 혹은 '언니'처럼 호칭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나이 많은 여자가 나이 어린 남자를 만나면서 '누나가 이거 했어.'라고 하면 왜 하필 '내가'가 아닌 '누나가'라는 말을 붙일까 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사랑하는 연인 사이는 동등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굳이 거기서 그런 호칭을 반복적으로 꺼내냐는 그 말이다. 현남 오빠에게 에서 조남주 작가가 쓴 소설은 내가 평소에 느꼈던 감정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지영의 남편, 대현은 깨어 있는 남자 축에 속하는 사람이다. 내가 육아 휴직 낼게.라는 대사를 듣는 순간, 우리 회사의 육아휴직제도를 쓰는 남자는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배 한 명의 말이 떠올랐다. 회사에 별 미련 없어서 쓰고 싶지만 아무도 안 써서 육아휴직 쓰는 1호가 되기는 싫다고 했다. 누군가가 쓰면 그다음에 또 누가 쓰고 하면 자기도 쓸 수 있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전히 그 누군가는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속 상황처럼 현실적으로 벌이의 문제기도 하고 승진의 문제기도 할 터였다. 외적으로도 그렇고 대화도 잘 통해서 잘 맞겠다고 생각했던 남자와의 소개팅에서 잘 되지 못했던 이유도 '그럼 애는 누가 키워요?'라는 시대착오적인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이사'의 스탠스처럼 아직도 애는 여자가 키워야 하고 엄마 손에서 안 큰 애들은 엄마 손에서 큰 애와 다르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육아와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친구는 절대로 엄마한테 의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 하나 키우기도 힘들었을 텐데 엄마의 아기가 아닌 나의 아기를 엄마에게 키워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냐고 했다. 가혹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가혹하게 할머니가 손주를 봐주는 집이 너무나도 많다.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었던 김 팀장 역시 엄마가 케어해 주었으니 그까지 올라가고도 다시 회사를 나와서 본인이 회사를 차리질 않았나.
르포처럼 쓰였던 책과는 달리 영화 <82년생 김지영>에는 빙의라는 요소가 더해지면서 조금 더 극적으로 보인다. 특히 마지막에 맘충이라 불리자 애써 모르는 척하던 지영이 발끈해서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느냐. 당신들끼리 한 말이라면 내가 안 들리게 하라."는 말 역시 현실에서 끙끙 싸매고 속앓이 하는 이들을 위한 시원한 한 방이었다.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나오면서 나를 당당하게 키우기 위해 애썼던 64년생 김지영 엄마께 감사했고 경상도 남자라서 무뚝뚝하지만 영화 속 지영의 아빠같이 딸이 좋아하는 음식이 '단팥빵'이라고 착각하지 않고 나를 위해 하나 더 챙겨주고, 내 인생을 응원하는 62년생 우리 아빠께 감사했다. 그래도 딸인 내가 보기에 아빠는 엄마의 일을 '같이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와준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시대는 많이 바뀌고 있지만 90년생 김지영인 내가 살아갈 세상이 아직은 까마득하다. 전국의 수많은 김지영들이 영화 속 김지영에 '빙의' 되어 분노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언젠가는 와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