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참 쉽다. 회사란 그런 곳이다. 상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내가 느낀 대로 누군가에 대해 내뱉는 곳. 비단 회사뿐만 아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누군가에 대한 수군거림, 누군가에 대한 가십이 난무하다. 그리고 그 화자 곁의 사람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화자가 하는 대로 같이 눈을 흘기고 입을 삐죽거리고 쯧쯧거리며 같이 욕을 한다. 상대의 속이 문드러져가는 줄도 모르고. 상대는 다 알고 있다. 당신이 내 욕을 하고 있고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당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니 내게 다가와서 우리 친해져요."
라고 해도 이상한 사람, 가만히 있어도 이상한 사람이 된다. 당사자는 그걸 알기에 가만히 있는 줄도 모르고 상대는 더 기고만장해져서 자꾸만 상대를 말로 짓밟으려 든다. 한때는 믿었다. 그래도 세상이 공정하고, 세상이 바르다면 언젠가는 그렇게 뿌린 말대로 자신이 누군가에게 한 그 욕들을 거두어 갈 것이라고. 그런데 세상은 공정하지도 않고 바르지도 않다. 그렇다면 당사자는 해명을 하고 다녀야 하나.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상대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니는 것이라고.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두효과처럼 처음 박힌 상대에 대한 인식과 편견이 쉽게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낙인이 무섭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유치원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을 것이며 서점가에 즐비해 있는 책 한 권만 펼쳐봐도 알 텐데 사람들은 그렇게 못된 짓을 일삼고 있다. 무리와 집단의 힘으로. 그리고 점심때마다 누군가를 씹어대는 그 험담 집단에 들어가지 못하면 상대를 '사회성 없는 아이' '모난 아이'라고 낙인찍는다. 말이 쉽다 참. 그렇다면 그렇게 유언비어를 만들어내고 즐거워하며 상대를 까내리는 그들은 사회성 있고 유연한 사람들일까. 제2의 낙인이 찍히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동조 혹은 방관하는 것은 아닐까.
낙인 못지않게 무서운 것이 동조 혹은 방관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어떤 소문을 들었을 때 상대가 어떤지 두고 보자고 판단하는 사람보다는 이런 사람이니 조심하고 멀리해야겠다고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당연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거리두기가 당사자에게 미칠 여파를 한 번이라도 입장 바꿔놓고 고민해 본다면 한 번쯤은 상대가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상대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판단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로 판단해야 마땅하다.
'낙인'찍고 '낙인'찍히는 게 너무나도 쉬운 사회다. 그리고 그 '낙인'은 '평판'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서 곳곳에 돌아다닌다. 쟤는 평판이 좋고 쟤는 평판이 나쁘다. 결국은 평판을 만드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고 사회 내에서 더 많은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힘들어한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서점가에는 자존감에 관한 도서가 즐비하다. 심지어 김훈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작당해서 나를 욕할 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네 놈들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내가 훼손되는 게 아니고, 니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지는 것도 아닐 거다. 그러니까 니들 마음대로 해봐라, 니들에 의해서 훼손되거나 거룩해지는 일 없이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
요즘 핫한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 삶에서 곧 사라질 존재들에게 마음의 에너지를 쏟는 것 역시 감정의 낭비다. 그만두면 끝일 회사 상사에게 어쩌다 마주치는 애정 없는 친척에게 웃으면서 열 받게 하는 빙그레 썅년에게 아닌 척 머리 굴리는 여우 같은 동기에게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에게 더는 감정을 낭비하지 말자. 마음 졸여도, 끙끙거려도, 미워해도 그들은 어차피 인생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곽정은의 '혼자의 발견' 에도 이런 말이 있다.
타인의 흠에 대해 뒷담화를 자주 꺼내는 사람은 멀리해야 한다. 그 사람이 언젠가는 나의 뒷담화도 다른 이와 하려고 할 테니까. 하지만 그 사람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리가 수월하지 않은 상태라면, 그의 뒷담화에 말을 보태지 말고 '그랬군요' 로 시작해 '그런데 말이에요.' 라며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것이 좋다. 만약 자신이 습관적으로 뒷담화를 꺼낸다면 기억해야 한다. 타인의 흠에 대해 뒷담화를 자주 꺼내는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나쁘다. 그런 사람일수록 상대는 '만만하다'고 느껴서 결국 그 역시 남의 뒷담화 소재가 되고야 말 테니까.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던 나 역시 자존감이 무너져서 서점의 자존감 관련 코너에서 약해져 있는 나를 북돋워줄 수 있는 책들만 주야장천 읽었던 적이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상한 사람 혹은 이상한 애라는 낙인을 찍히고 회사 어딘가에서 가시가 박힌 언어 돌 맞은 이들이 부디 모두 안녕하시길 바란다.
좋은 일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나쁜 일을 생각하면 나쁜 일이 생긴다. 우리는 우리가 하루 종일 생각하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