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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Nov 14. 2019

멕시코 친구네 가족과 함께한 연말

출국 전 배탈 대소동, 나는 과연 리마로 무사히 출국할 수 있을까

 2012년 12월 30일 오후 1시 43분. 멕시코 시티에서 페루 리마행 비행기를 타기로 되어있었던 내게 갑자기 복병이 생겼다. Boca Del Cielo에서 거북이 돕기 봉사활동을 하다가 같이 일하던 한국인의 비싼 헤드폰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우리는 섬에서 나오게 되었고 나는 멕시코 친구들 도움을 받아서 Tonala에서 멕시코 국내 여행 일정 계획을 세웠다.


너무 갑작스러운 여행 일정이었지만 나름 재미있게 유카탄 반도와 치아파스 쪽 여행을 한 후, 23일에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던 나는 크리스마스이브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안드레아, 펠리페네 가족과 함께 했다. 가족을 중시하는 나라답게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는데 내가 너무 많이 먹은 게 문제였는지 배탈이 났다. 그래서 26일에는 황열병 주사를 맞았을 때처럼 온몸에 열이 나고 오한이 들었다. 안드레아 가족과 함께 티후아깐을 가자는 일정은 내 배탈 때문에 미뤄졌고 다들 내가 30일 비행기를 타서 장기간의 여행을 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했다. 나도 많이 두려웠다.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하는 여행은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무려 7년 전인데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는 훨씬 한량 성향이 강해서 디테일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었다.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계획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내가 세운 거시적인 계획은 남미의 구석구석을 둘러보기에는 너무 터무니없는 계획이었음을 깨달았다. 비행기 티켓을 끊기 전에 생각했던 계획이 전반적으로는 지켜졌으나 중간에 포기하고 다른 루트로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의 내가 계획이 있었다면 여행의 결도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또 막상 리마에 도착해서 택시 기사에게 사기를 당해보니 정신이 번쩍 들어서 그때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눈을 여러 번 끔뻑거렸다.


배가 아프다가 아프지 않다가 수십 번 반복해서 내 위장이 얄미웠다. 일주일 동안 체했다가 먹고 다시 체했다가 먹고를 반복한 적 이래로 이렇게 위장이 변덕을 부린 건 처음이었다. 위장의 변덕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아 아버지의 리드 하에 12월 27일, 티 후아 칸에 갔고 거기서도 나의 화장실행은 반복되었다. 마추픽추를 가기 전에, 사진을 보고 기대를 엄청 했던 나는 돌덩이에 불과한 마추픽추를 보고 실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티후아깐에 가기 전에 보았던 우 슈만과 약실란의 영향 탓인지 티 후아 칸의 명성만큼 감화를 받지 못했다. 다만 티후아깐에서는 해변에서 광합성을 즐기는 사람들 못지않게 피라미드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거나 하늘을 바라보며 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라면 감히 상상도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멕시코는 티 후아 칸이 매우 유명한 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분방하게 관광객들이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아말로 프리스타일~



연말이라 그런지 티 후아 칸 근처에서는 마리아치들이 많이 있었고 크게 행사도 열렸던 터라 다들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화장실을 찾는 빈도수는 줄어들었고 나는 출국 직전에 포졸 레로 유명한 Casa De Tono에 들러 맛있는 포졸 레를 먹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멕시코 시티 공항으로 향했다. 그때 당시의 나는 정말 들떠 있었다. 그때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의자 한구석에 앉아서 끄적거렸던 일기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나저나 페루 잉카문명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일단 하나하나씩 헤쳐나가고 즐기면 어느새 난 콜롬비아에 가 있을 테고 어느새 난 또 쿠바에 가 있겠지. 헤헤 어제 쿠바 42만 원에 비행기 끊은 건 너무 아까웠지만 남미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괜찮다 이 정도쯤은. 엄청나게 큰 멕시코를 혼자 돌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도 할 수 있다. 똑같이 스페인어를 쓰는 국가고 페루는 잉카문명이고 볼리비아는 티티카카 호수, 우유니 사막이다. 아르헨티나는 파타고니아. 브라질은 삼바를 경험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난 유예기간을 통해 크고 있으며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뼈저리게 느낀다.


일기 내용대로 어느샌가 콜롬비아에 가 있고 어느샌가 쿠바에 갔던 것은 맞지만 브라질에서는 아쉽게도 삼바를 경험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꼭 가고 싶어 하는 우유니 사막보다 티티카카 트래킹이 더 좋았고 기대를 안 했던 아르헨티나에서 감흥을 많이 받았다. 돈을 조금 더 많이 벌어서 다시 남미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서 오래오래 머물거나 파타고니아에 가서 빙하 트래킹을 해 보고 싶다. 나는 과연 유예기간이라고 불리는 그 여행 동안 많이 컸을까. 일기를 들여다보니 내가 어렸다는 것이 말투나 글에서 드문드문 느껴지지만 지금 나는 일기를 쓰고 있지 않아서 비교를 할 수가 없다.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해야겠다. 공항에서 들뜬 채 일기를 쓴 후, 비행기를 탔고 나는 리마의 숙소에 도착해서 유명하다는 잉카콜라를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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