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 거주하는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우리는 열아홉이란 나이가 되면 통과의례를 치러내야 한다. 그 결과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되며 요즘 핫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아이들처럼 사교육이든 경쟁이든 어느 하나에 매몰되어 피폐해진다. 물론 머리가 좋은 천재라면 그 시기를 수월하게 넘길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남들이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결과를 받아 든 시골 촌년인 나는 상경을 하게 되었고 미친 듯이 놀았다.(학업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해두자. 그래도 내꿈을 향해 꾸준히 달린다고 달렸다.) 졸업 무렵엔 3.5도 안 되는 처참한 성적표에, 꿈 하나만 좇다가 취업이 안 되며 골골거리기까지 했으나 어찌 됐든 취업은 되었다. 너무나도 늦은 나이, 28살에.
2012년 당시, 스물셋이었던 나는 내가 엄청나게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다. 서른인 지금의 나는 내 나이가 많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때는 내가 애어른인 줄 알았지만 지금 나는 내가 얼마나 철없는지도 알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건 어찌 되었든 난 내 주관이 너무나도 확실하고 누군가 날 이유없이 누르거나 하면 용수철처럼 튕겨나가는 반골(?)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라는 것. 이래저래 부족한 것도 많지만 난 나 스스로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호기심 레이더를 시종일관 켜놓고 조금은 독특하게 또 조금은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살아가고싶다. 타인에게 방해되지 않는 선 안에서.
요즘이야 연차 사흘, 나흘 쓰는 것도 눈치 보느라 그토록 가고 싶었던 인도와 티베트에는 언제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만 하고 있다. 퇴사를 하지 않는 한 절대로 못 갈 것만 같은 인도여. 인도는 그렇게 내게 꿈의 나라로 남아있다. 혹자는 무서워서, 지저분해서 가기 싫다고 하지만 남미 여행 중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남미를 좋아하는 너라면 인도가 정말 잘 맞을 거야 였고, 멕시코 교환학생 당시 봤던 네덜란드인은 인도가 최고라고 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인도를 가고 싶다.
꿈에 매몰되어 몇 년을 지내느라 내 여행은 2015년 2월에 갔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이 마지막이었던 터였다. 2017년 입사 후, 눈치를 봐가며 겨우 나 홀로 갔던 여행지는 오사카, 교토였는데 어찌나 어색하던지. 물론 그 여행 이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대만을 시작으로 해묵혀 놓았던 방랑병을 다시 시작했다.
두번째 휴가는 태국이었다. 새벽 세시 무렵에 도착해서는 짐만 게스트 하우스에 풀고 바로 태국 왕궁 투어에 나서면서 여행 벤에서 내내 자며 내몸을 혹사시켰다. 너무나도 우울했던 내 기분을 그곳에서 업시키고 싶었다. 어찌 보면 작년에 계속 여행을 질렀던 것은 보상받고 싶었던 심리,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채우고 싶은 심리 때문이었던 듯하다. 오월 어린이날 무렵의 후쿠오카 근교 히타 여행도, 요즘 핫하다는 다낭 여행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여행도 나쁘진 않았지만 도깨비 여행처럼 후딱후딱 보고 왔던 터라 그리 맘에 남진 않았다. 물론 후쿠오카와 히타에서의 여행 때는 몸을 바삐 움직이지 않고 느릿느릿 거북처럼 움직였다.
다낭에서는 휴양지와 맞지 않는 내 기질이 발현되어 다시는 휴양지에 가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고 블라디보스토크는 오래간만에 맛본 유럽의 향기는 좋았으나 너무나도 생각보다 할 것이 없어 힘들었다. 직장인이 되어서 부유한 여행을 여유롭게 하게 될 줄 알았지만 그건 내 체질에 맞지 않았다. 다낭의 한 호텔 수영장서 수영만 계속하다가 질려버린 나머지 자꾸만 어딜 찾아다녔지만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어딜 가나, 나는 거리를 걷고 그리 유명하지 않은 동네빵집에서 맛있는 빵을 발견하면서 행복해하고, 예상치 못하게 현지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여행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일례로, 태국에서는 태국의 현지인 덕분에 그랩으로 오토바이를 탈 수 있었다. 내가 너무 뭘 많이 사서 택스프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캐셔 언니가 영어를 못 하자, 뒤에 있던 아주머니가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며 나를 도와줬다. 알고보니 유부녀는 아니었고 고양이와 오랫동안 함께 살아 온 캣맘이었는데 얼마 전 고양이가 하늘나라에 가는 바람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취업률과 한국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로부터 전해들었는지 내게 확인차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어릴 적에 오랫동안 살아서인지 영어를 잘 했다. 다만 직업이 여러가지였고 자신도 그랩에 등록된 운전사라고 했다. 말로만 듣던 그랩이라니 신기했다. 그녀는 택시를 타겠다는 내게 그랩을 이용해 보라고 추천했고 그녀 덕에 그랩으로 오토바이를 탈 수 있었다. 태국에서 했던 경험 중에 제일 짜릿하고 신났던듯. 오토바이에 쏟아질 듯 말듯한 비닐봉지를 가득 실은 채 거리의 무법자처럼 마구 내달렸던 것 같다. 대만에서는 물론 동생과 싸웠지만 부추빵스러운 빵을 파는 대만 베이커리에서 아침마다 먹은 그 빵이 정말 좋았다. 러시아에서는 마지막에 우리에게 잘 가라고 포옹해준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가 정말 좋았다.
그러고 보니 다낭에서 좋았던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히타에서 좋았던 건 내내 걸으면서 맡았던 간장 냄새. 그리고 그때 우연히 들고 갔던 <종의 기원> 책이 너무 좋아서 단숨에 읽고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잠들기 전 책을 붙들고 있었던 것. 그게 좋았다. 비행기에서조차 책 삼매경이어서 1시간에 훅 하고 한국에 도착했을 때 놀랄 지경. 다낭 갈 때도 똑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천명관의 <고래>를 들고 갔는데 다 읽지 못했다고 한다.
다낭의 오토바이 냄새가 지독히도 싫었다. 다만, 베트남 콩 카페 커피가 너무 좋았던 것. 그게 다다. 사족은 길었지만 아무리 곳곳을 다녀봐도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는 남미라는 것. 아직 아프리카를 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는 남미라는 사실은 변치 않을 사실.
꾀죄죄해가며 다니던 내게 남미는 따스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