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_ 영혼의 온도 _ 08

by 성요셉



관리자 마음이 변하면 반품하는 건가요?


다미는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했다. 병원은 3층 건물이 ㄷ자 형으로 이뤄졌고 본관 앞으로는 분수대와 주차장이 있었다. 건물 뒤쪽으로는 유럽식으로 잘 꾸며진 정원이 조성되었고, 작은 노천극장도 있었다.


병실은 넓고 고급가구와 최신 기계가 환자의 취향대로 채워져 호텔처럼 아늑했다. 간호사나 요양도우미가 로봇으로 대체된 지 오래지만, 다미처럼 인간 요양보호사는 연봉도 높았고 자격증도 쉽게 딸 수 없었다. 그만큼 병원비는 비쌌고 환자들도 부유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백발의 노부부가 두 개의 베드에 각각 누워있었다. 연명 기구에 둘러싸여 의식 없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할머니는 힘들지만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노부부를 지켜보는 다미 옆으로 의사 제휘가 차트를 들고 서있었다.


제휘는 삼십 대 후반으로 키는 훤칠하고 피부는 하얗고 곱상했다. 머리는 희끗한 새치가 났지만 염색을 한 흔적은 없었다. 일 년 전 아내를 병으로 잃은 뒤로 부쩍 말라가고 있었다. 수년째 이 병원에서 근무했던 다미와 달리 제휘는 이곳에 온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다. 서로가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둘은 한 직장에 다니면서도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제휘는 환자들에게 다정한 의사였지만 늘 혼자였고 말수도 없었다.


할머니의 심전도기에 일자선이 그어지며 심정지 사인음이 울렸다. 제휘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사망 선고를 했다.


“이서연 환자 사망 시각 오후 3시 20분.”


제휘가 태블릿에 내용을 기록하면 다미가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이어서 제휘가 의식 없이 숨만 쉬고 있는 할아버지의 연명 기구를 제거하자 또다시 심정지를 알리는 사인음이 이어졌다.


“김도진 환자 사망 시각 오후 3시 21분”


제휘가 태블릿에 사망시각을 기록했다. 다미는 노부부의 얼굴을 흰 천으로 덮었다. 다미의 시선이 노부부의 꽉 잡은 두 손에 머물렀다. 다미가 잠시 망설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그 손을 각자의 베드로 집어넣었다. 자녀가 없는 노부부는 한날한시에 죽음을 맞고 싶었고, 이미 뇌사와 다름없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죽음을 기다렸다.


다미와 제휘가 병실을 나와서 나란히 걸었다.


“다미 씨가 5년 보살폈죠? 수고했어요.”

“수고는 뭐.”


다미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부부 사이가 좋았다죠? 저렇게 같은 시각에 천국 가는 것도 큰 복이네요.”

“부러워요.”


평소에 말이 없던 제휘가 오늘따라 말을 자꾸 걸었다.


“남편 소식 들었어요. 어때요? 진짜 같아요?”


다미가 불편한 기색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똑같은 느낌인지 궁금해요.”


제휘가 다미의 대답을 재촉하듯 또다시 물었다. 다미가 손에 든 태블릿을 꽉 움켜쥐었다.


“만약 관리자 마음이 변하면 반품하는 건가요?”


다미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아이씨…….”


제휘가 짐짓 놀라 다미를 쳐다보았다.


“네?”

“아이씨뱅크에 전화해 보세요. 거기 상담원은 그 질문을 무례하다고 생각 안 할 거예요.”


다미가 앞서 뚜벅뚜벅 걸어가면 제휘가 그제야 깨달은 듯 자신의 머리를 툭 쳤다. 제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미 옆으로 다가섰다.


“미안해요. 제가 말실수를 했어요.”


다미가 시선을 주지 않고 걸으면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전화번호도 알려드려요?”

“애가 아파요.”


다미의 걸음이 느려졌다.


“우리 애. 뇌스캔 해놓을까 해서요. 애 엄마 쪽 유전병이거든요. 애 엄마는 보냈지만 애는 그렇게 못 하겠어서. 불쾌하게 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해드릴 말 없어요.”


다미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풀렸다.


“아무 말 안 해줘도 돼요. 하나는 확실히 알았으니까.”

“뭘요?”

“상처될 질문을 무방비로 받게 된다는 거. 제가 경솔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다미는 그제야 마음이 풀어졌다.


다미와 제휘는 트랜스휴먼이 된 남편 이야기를 정원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나눴다. 제휘는 다미가 알려주는 모든 말들을 귀담아 들었다.


“실리콘 냄새가 나요. 그 사람만의 향이 사라진 거죠. 참 좋아했는데.”

“그렇군요. 우리 애, 땀 냄새도 좋은데.”

“다 좋을 순 없죠. 살았을 때도 다 좋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냥 만족해요.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 남편이라고 완벽하게 믿게 되니까. 그 사람 몸에 피 대신 전기가 흐른대도요.”


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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