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휘와 다미의 대화는 퇴근하면서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 이어졌다. 동병상련의 아픔이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슬픔을 공유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게 두 사람의 숨구멍이었다. 제휘는 생각보다 따뜻한 남자였다. 그들이 분수대를 지나 주차장으로 걸어오는데 유건이 서있었다. 다미가 짐짓 놀라 머뭇거렸다.
“어, 자기야.”
“저녁 같이 먹으려고 왔지.”
“아, 남편분.”
제휘는 한눈에 유건을 알아봤다. 다미가 자기라고 말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같지만 지나치게 매끈한 모습에 트랜스휴먼임을 직감했다.
“안녕하세요. 차제휘입니다.”
“같이 일하시는 분이셔.”
다미는 유건에게 인사를 시키면서도 뭔가를 들킨 것 마냥 손동작이 어색했다.
“네, 반갑습니다.”
“그럼 전 이만,”
제휘가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몸을 틀었다.
“수고하셨어요.”
다미가 제휘에게 어색한 인사를 건네고 유건의 팔짱을 꼈다.
“전엔 남자 옆에만 있어도 쌍불 켜고 경계하더니.”
“그런 건 다 열등한 인간들 감정이야. 난 이제 인간의 창의력과 로봇의 우월한 능력을 다 갖춘 초인인데, 그런 열등한 감정 따위 있을 리가 없지.”
“꼭 나쁘지만은 않았는데.”
유건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적당히 질투를 했었다. 권태감이 올법한데도 늘 다미를 여자로 바라보았고, 연인처럼 대했다. 그럴 때마다 다미는 묘한 긴장감을 즐겼다. 그런데 지금의 그는 너무 담백했다. 조금 아쉬웠다.
“질투 흉내라도 내줄까?”
“됐어.”
다미가 입술을 비죽이고 차에 올라탔다. 유건은 오늘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그녀가 직접 보고 놀라는 모습을 만끽하고 싶었다. 다른 남자 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유건과 다미는 단골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좌석은 많지 않았으나 클래식한 인테리어가 고풍스러운 곳이었다. 유건과 다미가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남자 직원이 정중하게 인사하며 맞았다.
“한동안 못 뵀는데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셨나요?”
“네? 아, 여행. 여행 다녀왔어요.”
“즐거운 여행이셨나 봐요. 얼굴이 좋아지셨어요. 자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의 알은체에 유건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변화를 감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흥분했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두 사람은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는 예약한 대로 주세요.”
“네.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직원은 정중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유건이 몸을 바짝 테이블에 기대며 말했다.
“나 달라진 거 모르는 거 같지?”
“응.”
“자긴 어때?”
“뭐가?”
“나 달라진 거. 술배 대신 근육이라 좋다라든가.”
“술 마시는 걸로 걱정 안 시키는 거? 좋지. 코 고는 소리는 참을만해도 이 가는 건 좀 힘들었는데, 잘 때 조용해서 좋고. 그중…….잠자리가 최고지.”
“음. 역시. 장점투성이야.”
“근데, 먹는 거 괜찮겠어?”
“자기가 먹으면 똥이지만 나야 음식물쓰레기지 뭐.”
다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만. 상상하게 하지 마.”
“쏘리.”
다미는 레스토랑을 둘러보았다. 잔잔한 음악소리와 낡았지만 포근한 벨벳 의자, 버건디색 벽과 그린 카펫이 깔린 바닥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다미는 이곳에서 쌓은 추억을 떠올렸다.
“다신 못 오는 줄 알았는데……여기서 우리 처음 만나고, 프러포즈하고, 중요한 날엔 꼭 이곳에 왔잖아. 이 레스토랑 문 닫아서 못 오게 되면 많이 슬플 거야.”
“나 트랜스휴먼 가입하기 정말 잘했지?”
“그렇긴 하지.”
다미는 유건의 말이 썩 흡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 십 년간 변하지 않은 이곳에 변한 이는 유건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올 수 있어서 감사했지만 이전처럼 기쁘기보다 서글픔이 더 컸다.
저녁을 마치고 집으로 오자 마당에는 어둠이 깔렸다. 부부의 차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유건이 주차를 하고 눈동자 색을 파랗게 바꿨다. 그러자 집안과 마당에 자동으로 불이 들어왔다. 다미는 그런 유건의 눈빛이 차갑게 느껴졌다.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면 유건이 다미의 뒤에 서서 그녀의 눈을 두 손으로 감쌌다.
“자 눈 감으시고.”
“뭔데?”
“엄청난 걸 보게 될 거야.”
맞춤법과 띄어쓰기 오류, 비문 등 발견 즉시 제보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