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뇨.”
“그랬겠죠.”
유건이 소파에 걸쳐둔 재킷을 집어 들었다.
“근데 조금 달랐어요.”
“……?”
트랜스휴먼에 뇌를 다운로드 한 이후의 기억이었기에 현재의 유건은 그날을 기억할 수 없었다. 유건은 김관장의 마지막 말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아내가 버리면 내게 와요. 관리자 양도, 그건 되잖아? 어차피 내가 원하는 건 섹스, 그리고 작가로서의 가치니까.”
유건이 대답 없이 문밖으로 나갔다.
김관장은 입안에 와인을 한 모금 털고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삼주 전 그날도 유건은 흔들림 없이 이곳을 벗어났다. 그날을 생각하니 김관장은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그래서 거절이다? 왜?”
유건의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낭만적이었다.
“관장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김관장이 유건의 사랑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남자의 사랑을 깨고 싶었다. 아니 자신은 갖지 못한 다미의 사랑을 깨고 싶었다. 김관장은 그날 유건을 보내고 분한 마음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신이 어린 것 외에 나을 것 하나 없는 여자에게 모든 것을 져 버린 기분이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 그의 대답이 달라졌다. 김관장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크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이번에는 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조금만 흔들어대면 이길 것 같았다. 김관장은 남은 와인을 잔에 부어 남김없이 마셨다. 오늘따라 와인 향이 혀끝을 야릇하게 감쌌다.
제휘와 다미는 그날 이후로 부쩍 가까워졌다. 트랜스휴먼에 대한 이야기가 둘의 공통 관심사였으나 그로 인한 삶과 사랑과 사람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다미는 말수가 없고 냉소적으로 보였던 제휘가 사실은 슬픔을 견디는 중이라는 것에 더욱 연민을 느꼈고 대화를 할수록 공감대가 많았던 탓에 친밀감이 커졌다.
이제는 점심도 같이 먹고 시간이 되면 커피도 건네는 사이가 되었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정원에서 병원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그들 앞으로 휠체어 탄 할아버지와 젊은 여자 트랜스휴먼이 지나갔다. 트랜스휴먼은 동그란 표면에 3D 영상으로 얼굴과 머리가 표현되었다. 두 사람은 멈칫 놀랐고 그들이 눈치채지 않는 선에서 지켜보았다.
“윤빈 환자 부인이 트랜스휴먼이었네요?”
“그러게요. 부인이 많이 어리다 싶었는데, 젊은 시절 얼굴이었군요?”
두 사람은 새 로봇법으로 바뀐 트랜스휴먼의 얼굴에 적잖은 염려가 밀려왔다.
“트랜스휴먼 머리가 저렇게 바뀐다니.”
다미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너무 낯설었다. 몸이 사람이지만 이질감에 소름이 돋았다. 제휘가 그런 다미의 표정을 읽었다.
“남편분은 아직이죠?”
“네, 곧 바꾸러 가요. 느낌이 이상하네요.”
“곧 적응되겠죠.”
“그러겠죠? 외형 바뀐다고 존재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제휘와 다미는 각자의 머릿속에 사랑하는 이의 트랜스휴먼을 떠올렸다. 거부할 수도 없고 돌이킬 수 없었기에 어떻게든 마음을 긍정적으로 붙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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