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단계로 나누는 갈등의 심각성, 그리고 이를 위한 빌드업
갈등은 이야기의 심장이다.
하지만 갈등을 “있다 / 없다”의 이분법으로만 다루면, 이야기는 늘 비슷한 톤으로 흘러가기 쉽다.
좋은 이야기일수록 갈등은 단순히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단계를 밟아 올라가며 심각성을 높여간다.
이번 글에서는 갈등을 다섯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에서 인물의 행동, 말투, 심리,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이 단계를 어떻게 빌드업할 것인지 구체적인 장치도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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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갈등의 단계를 나누어야 하는가
갈등이 단계를 거치며 커져가는 이야기는 독자에게 훨씬 큰 몰입을 준다.
• 왜냐하면 인물의 반응이 점진적으로 격화되기 때문이다.
• 독자는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되돌릴 수 없는 국면에 이른 인물을 보며 감정적으로 깊이 빠져든다.
또한 단계별 갈등 구분은 작가에게도 큰 이점이 있다.
• 장면 설계 시 “지금 이 갈등은 몇 단계인가?”를 의식하면,
• 인물의 말투, 태도, 사건의 크기를 조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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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다섯 단계
① 미세한 불협화음 (Tension)
• 표면상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 그러나 인물의 표정, 말투, 미묘한 단어 선택에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 인물들은 아직 갈등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예시
“아니야, 아무것도 아냐.”
(하지만 손끝이 떨리고 있다.)
빌드업 장치
• Subtext (행간에 숨은 감정)
• 어색한 침묵
• 반복되는 작은 신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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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작은 충돌 (Minor Conflict)
• 갈등이 구체적인 언쟁이나 태도로 드러난다.
• 그러나 감정 폭발로 이어지지 않고, 일단 봉합된다.
• 인물들은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예시
“왜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해?”
“그런 식이라니? 네가 예민한 거 아냐?”
빌드업 장치
• 갑작스러운 톤 변화
• 날 선 단어 하나
• 불편하게 흐르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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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심리적 균열 (Inner Rifting)
• 갈등이 인물 내면에서 깊어지며, 심리적 부담으로 쌓인다.
• 겉으로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독자는 인물이 점점 한계로 몰리고 있음을 느낀다.
• 관계의 틈도 눈에 띄게 커진다.
예시
“괜찮아. 나 혼자 처리할 수 있어.”
(하지만 그 눈엔 눈물이 고여 있다.)
빌드업 장치
• 독백, 내적 갈등의 드러남
• 무언가를 회피하려는 행동
• 극도의 말수 감소 혹은 과도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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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노골적 충돌 (Major Conflict)
• 갈등이 폭발한다.
• 큰소리, 눈물, 물리적 충돌 등 외적 행동으로 표출된다.
• 관계가 결정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 지점.
예시
“내가 언제까지 참을 줄 알아?!”
“그래, 결국 네 본심이 그거였지!”
빌드업 장치
• 도발적인 언행
• 숨겨온 비밀의 폭로
• 감정의 한계선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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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돌이킬 수 없는 단절 (Irreversible Break)
• 이제 갈등은 수습 불가능한 국면으로 접어든다.
• 관계가 파탄나거나, 인물의 가치관이 완전히 붕괴된다.
• 이야기의 큰 전환점이 되며, 서사의 정점에 위치한다.
예시
“다신 너 안 볼 거야.”
혹은
“그래, 난 이제 네 편이 아니야.”
빌드업 장치
• 최후통첩
• 감정 단절 선언
• 행동으로 옮겨지는 파국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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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단계를 활용하는 법
이 다섯 단계는 단순히 분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단계를 서서히 올라가게 만드는 과정이다.
“지금 이 장면은 갈등의 몇 단계인가?”
“앞선 장면보다 심각성이 높아졌는가?”
“인물의 말투, 표정, 행동은 단계에 맞게 달라지고 있는가?”
이 질문을 수시로 점검하면, 이야기는 단선적이지 않고 리듬과 상승곡선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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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실습
마지막으로 작은 실습을 제안한다.
아래처럼 하나의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을 다섯 단계로 발전시켜보자.
상황: 연인이 약속을 어겼다.
① 미세한 불협화음
→ “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좀 늦었을 뿐이잖아.”
② 작은 충돌
→ “너 요즘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③ 심리적 균열
→ (속으로) “혹시 다른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④ 노골적 충돌
→ “솔직히 말해. 다른 사람 있지?”
⑤ 돌이킬 수 없는 단절
→ “이제 끝내자. 우리 둘 다 더는 못 버틸 것 같아.”
이렇게 하나의 갈등이 다섯 단계를 거치며 어떻게 커질 수 있는지 연습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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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갈등은 이야기의 불꽃이다.
하지만 그 불꽃은 서서히 타올라야 진짜 무섭고 아름답다.
이 다섯 단계는 갈등의 온도를 올리고, 독자에게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숨죽인 기대를 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