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건 설계 실습

by 이다유

사건을 설계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할까?”를 고르는 일이 아니다.
사건은 인물의 욕망과 갈등을 시험하는 장치여야 한다.
따라서 좋은 사건을 만들려면, 먼저 인물의 내면과 세계관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

1단계. 인물의 욕망과 결핍 다시 확인하기

욕망: 인물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


결핍: 그가 채우지 못한 공백


세계관: 세상을 바라보는 틀


� 예시

욕망: 사랑받고 싶다


결핍: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기억


세계관: “사람은 결국 나를 떠난다”


2단계. 세계관을 시험대에 올릴 사건 만들기

사건은 인물의 세계관과 정반대의 상황을 던져야 한다.

� 예시

세계관: “사람은 결국 나를 떠난다”


사건: 누군가 진심으로 다가오며 “나는 떠나지 않아”라고 말한다.


이 사건이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인물의 뿌리 깊은 믿음을 흔드는 계기가 된다.

3단계. 갈등의 두 힘을 배치하기

갈등은 늘 두 힘의 충돌이다.

인물의 욕망을 이루려는 힘


그것을 막으려는 힘


� 예시

욕망: 사랑받고 싶다


방해: 떠날까 두려워 관계를 스스로 망쳐버리는 자기 파괴적 행동


이렇게 두 힘을 충돌시키면, 사건은 자동으로 이야기를 움직인다.

4단계. 크기와 깊이 조절하기

사건의 크기는 외부 세계에 미치는 영향,
깊이는 인물의 내면과 닿아 있는 정도다.

� 같은 인물로 설정한 예시

작은 사건 + 깊은 파장: 연인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과거의 상처를 찌른다.


큰 사건 + 얕은 파장: 회사에서 해고당했지만, 그것은 인물의 내면보다는 외부적 위기를 만든다.


큰 사건 + 깊은 파장: 연인이 떠나겠다고 선언하며, 동시에 인물의 세계관을 정면으로 깨뜨린다.


5단계. 배열하기

사건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작은 사건으로 내면을 흔들고,
중간 사건으로 외부 압박을 더하며,
마침내 큰 사건으로 갈등을 폭발시킨다.

� 예시 배열

작은 사건 — 연인의 무심한 농담 → 과거의 상처 자극


중간 사건 — 연인의 장기간 출장 → “역시 떠날 거야”라는 두려움 확대


절정 사건 — 연인이 함께 살자고 제안 → 세계관과 정면 충돌


6단계. 직접 실습하기

여러분의 주인공을 떠올려보자.

그 인물의 욕망·결핍·세계관을 적어본다.


그 세계관을 시험할 수 있는 사건 하나를 만든다.


그 사건이 인물의 반응을 불러오도록 질문을 던진다. “이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그 반응이 새로운 사건을 어떻게 불러올까?”


작은 단위의 설계이지만,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사건의 연쇄가 하나의 서사로 자라난다.


아래는 그 예시다


1. 고조의 단계 — 『햄릿』의 예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보면 사건 배열이 교과서처럼 드러난다.

발단: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머니가 숙부와 재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작은 균열)


전개: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진실을 알리고, 햄릿은 복수의 결심과 망설임 사이를 오간다. (갈등 심화)


위기: 어머니의 방에서 폴로니우스를 죽이며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선다. (긴장 고조)


절정: 검투 장면에서 숙부와 최후의 결전을 치른다. (폭발)


해소: 햄릿의 죽음과 함께 덴마크 왕국 전체가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간다. (결과와 흔적)


햄릿의 이야기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각 사건이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과 세계관을 시험하는 과정으로 배열되었기에 지금도 살아 있다.


2. 간격의 조율 — 『오만과 편견』의 예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사건 배열의 리듬이 특히 뛰어나다.

작은 사건: 다아시가 엘리자베스를 무도회에서 무시한다. (사소하지만 인물 내면의 반감을 키움)


중간 사건: 첫 번째 청혼에서의 충돌. (관계의 균열 확대)


잠시 숨 고르는 간극: 다아시의 편지를 읽고, 오해가 풀리는 과정. (내적 변화의 준비)


절정: 두 번째 청혼에서의 재결합.


이 소설의 긴장감은 사건 하나하나가 크지 않아도, 간격과 배열을 정교하게 조율했기에 가능하다. 작은 사건들이 독자의 감정을 흔들고, 큰 사건으로 연결되며, 다시 잠시 진정되는 리듬이 반복된다.


3. 깊이의 작동 — 영화 『기생충』의 예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사건의 크기와 깊이를 동시에 활용한다.

반지하 가족이 부잣집에 하나씩 침투하는 과정은 크기가 작은 사건이지만, 인물들의 욕망과 직결되어 깊이가 크다.


지하실 가족의 존재가 드러나는 장면은 외부적으로도 큰 사건이고, 동시에 ‘이 집의 기생충 자리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마지막 폭력적 결말은 크기와 깊이가 모두 극대화된 절정 사건이다.


이 영화는 사건들이 점차 쌓이며 갈등을 고조시키는 전형적인 사례다. 작은 사건이 내면을 흔들고, 그 축적이 거대한 폭발을 이끈다.


4. 해소의 의미 — 『변신』의 예시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하는 장면은 초반의 단일 사건이지만, 이후 사건 배열 전체를 결정한다.

가족들의 태도 변화, 직장의 압박, 생존의 위기라는 중간 사건들이 이어지며 갈등을 고조시킨다.


결국 가족에 의해 버려지는 절정의 순간에서 갈등은 폭발한다.


마지막 해소는 ‘그레고르 없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가족의 모습이다.


여기서 해소란 단순히 사건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


정리

사건 배열의 기술은 단순히 “큰 사건 → 작은 사건”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적 파장(깊이)**과 **외부 세계의 파장(크기)**을 교차시키며,
그 리듬으로 독자의 감정을 끌어가는 일이다.

좋은 작품일수록 이 배열이 치밀하다.
작은 사건조차 인물의 욕망과 결핍을 건드리고,
그 축적이 마침내 큰 사건을 불러온다.
그리고 해소는 새로운 상태로의 도약을 의미한다.


마무리

사건 설계의 핵심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가 아니라
“이 인물에게 어떤 시험을 던질까?”이다.
좋은 사건은 인물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새로운 사건을 불러낸다.
그 연쇄가 바로 서사의 숨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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