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공간과 인물의 관계

by 이다유

인물은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가 머무는 공간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그의 내면과 성격, 나아가 그의 욕망과 행동을 드러내는 장치인 것이다. 따라서 공간과 인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인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길이 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의 방은 그 자체로 그의 내면을 상징한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의 좁고 눅눅한 다락방에 기거한다. 햇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그 방은 그의 고립과 빈곤, 뒤틀린 자존심을 그대로 담아내는 공간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세상과 단절된 그 공간에서 끝없는 사유에 잠기고, 결국 살인을 저지를 논리를 만들어낸다. 만약 그가 넓고 밝은 집에 살았다면, 그의 내면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공간은 인물을 길러내고, 인물은 공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국 소설에서도 이 관계는 선명하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소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과, 피난지 시골 공간을 오가며 성장한다. 그 공간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녀가 세계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틀을 형성한다. 서울의 폐허는 상실과 결핍을, 시골의 풍경은 공동체와 생존의 방식을 각인시킨다. 결국 인물의 세계관은 공간을 통해 빚어지는 것이다.


공간은 인물의 관계에도 깊이 관여한다. 교실, 군대, 병원, 법정과 같은 제도적 공간은 인물에게 특정한 역할과 행동을 강요한다. 한 학생은 교실에서 ‘성실한 모범생’으로 존재하지만, 같은 인물이 집에서는 ‘말을 듣지 않는 자식’으로 드러난다. 공간이 달라짐에 따라 인물의 정체성도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공간과 인물은 언제나 상호작용한다. 인물은 공간에 의해 규정되지만, 동시에 공간을 자신의 내면에 맞게 재해석하며 살아간다. 작가가 인물을 설계할 때 공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인물의 내면과 행동은 전혀 다르게 드러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인물과 공간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인물이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그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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