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도 무거운 관계들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자에게 유독 달콤하게 들리는 말들이 있을 거다.
나는 그중에서도, 이 말에 약한 편이다.
“대표님은 디자인에만 신경 쓰세요.”
특히 사업 초반에 일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그 말 한마디에 기대어 손을 잡게 되는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렇게 일을 나누었던 업체들이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도 함께 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영영 만나고 싶지 않은 관계로 끝난 팀도 있다.
공교롭게도
처음에 자신 있게 호언장담을 하는 사람일수록,
문제가 생기면 그럴싸한 핑계를 남기고 사라졌다.
시공 하자가 생기니 민망함을 핑계로 연락이 끊기고,
때로는 이 분야의 사업에 대해 조언하는 듯 다가왔다가
어려움이 생길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도망이었다.
이 분은 정말 좋은 분일 거야, 했지만
조금의 힘듦도 견뎌내지 못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사업 선배라더니, 이 정도도 못 버티나?’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다가와 책임을 피하고 떠난 사람들 대부분이
결국 자기 사업을 잘 유지하지 못하는 걸 봐왔기에
내가, 또 여전히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건,
그 어려움과 난관을, 피하고 싶은 책임을
도망치지 않고 맞섰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작은 믿음과 프라이드도 가지게 되었다.
한 때는 크나큰 손해 같던 순간이 있을지라도
그게 결국 어딘가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밑거름으로 남는 걸
그들은 왜 알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신뢰가 무너지는 경험들이 몇 번 쌓이다 보면
신뢰란 말이 조금은 무겁게 느껴진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부족했던 걸까’
라고 생각하게 될 때도 있지만,
사실 많은 결과에는 상황이라는 이유가 존재한다.
처음엔 상황 이면의 사람에 대한 실망이 더 크게 보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전부란 생각을 한다.
그런 시간들 사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팀들과는
오래 손을 잡고 올 수 있었다.
부르면 와주고, 묵묵히 일을 해내주는 사람들.
그들은 단지 기술적 신뢰를 넘어,
불안정한 일상을 함께 버텨준 존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암만 깊은 신뢰도 상황 앞에선 때때로 흔들린다.
서로를 믿는 방식이 달랐음이 그제서야 드러날 때,
그 믿음은 작은 균열을 피하기 어렵다.
그럴 때면,
믿어온 시간이 너무나 가벼운 종잇조각처럼 되어
허공에 흩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좋았던 시간과 서운함의 감정은
한 관계 안에 늘 함께 존재하며 제 자리를 다툰다.
우린 그중 어디에 더 방점을 둘 지를 선택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받는 만큼 상대도 주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 믿음이 적당히 대칭을 이루는 균형 속에서만이
관계는 지속 가능하다.
이는, 모든 협력 관계의 핵심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묻는다.
내가 정말 믿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최근,
누군가의 협력이 절실했지만
나 스스로 해내야 한다고 결심하고 진행한 일이 있었다.
‘우리 팀이 이걸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에 며칠 밤 내도록 잠을 못 이뤘지만
시작하고 나니 웬걸, 생각보다 모든 게 순탄했다.
그렇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지뢰 찾기 판도
몇 개 지뢰를 터뜨리다 보면 어느새 땅이 드러난다.
지뢰가 터질까 봐 무서워 아무것도 클릭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컴퓨터를 끄게 된다.
그러니 그것은 두려움의 순간이 아니라
내 판단과 가능성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다.
여러 관계들 속에서 다른 이가 채워주었던
나의 일부를 다시 되찾는 기회이다.
얼마 전,
운전면허를 딴 이래 10년 만에 운전을 시작한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언니, 난 평생 남편이 운전 안 해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해보니까 별 것도 아니더라. 내가 이걸 왜 겁냈는지 몰라. “
각자의 리듬에 맞는 어느 지점에 만나 호기롭게
한 배를 항해해 간다는 것,
그건 어쩌면 황량한 사업의 바다에서
참으로 운 좋은 에피소드 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간 돌아선 관계들조차
언젠가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다면
좋은 인연으로 인사할 수 있길 늘 바라기는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이 자리를 잘,
굳건히 지켜내리란 다짐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