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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라디오

1901년

후기 낭만주의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는 1901년부터 1904년에 걸쳐 연작 가곡 [Kindertotenlieder]를 작곡, 발표했습니다.

우리말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뜻을 갖고 있으며, 모두 다섯 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곡: ‘Nun will die Sonn′ so hell aufgeh′n(태양은 저토록 찬란하게 떠오르려 하네)’

2곡: ‘Nun seh′ ich wohl, warum so dunkle Flammen(왜 그처럼 어두운 눈길을 보냈는지 이제는 알겠네)’

3곡: ‘Wenn dein Mütterlein(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4곡: ‘Oft denk′ ich, sie sind nur ausgegangen(때로 난 아이들이 그저 놀러 나간 거라고 생각하지)’

5곡: ‘In diesem Wetter(이런 날씨에, 이렇게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에)’


연작 가곡 [Kindertotenlieder]의 가사는 독일 시인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Friedrich Rückert)의 시집 [Kindertotenlieder]에서 가져왔습니다.

병으로 두 자식을 떠나보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는 1833, 34년 두 해 428편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뒤인 1871년 428편의 시는 [Kindertotenlieder]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후 구스타프 말러가 시집 [Kindertotenlieder]에서 다섯 편을 연작 가곡 [Kindertotenlieder]로 옮겨 담았습니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는 원래 피아노 반주로 작곡되었지만 이후 관현악으로 편곡되었다. 억제되고 체념하는 듯한 음악은 상징주의의 영향을 보여주며, 삶과 죽음이 영원한 새 생명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는 그의 종교적 신념을 담고 있다. 말러는 다섯 개의 노래가 모두 연이어서 연주될 것을 지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끝없는 절망과 그 절망 속에서 발견하는 부활에의 믿음을 더욱 연속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출처: 다음 클래식 백과)


구스타프 말러의 연작 가곡 [Kindertotenlieder]에서 두 번째로 슬픈 두 번째 곡 ‘Nun seh' ich wohl, warum so dunkle Flammen’을 듣습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독일군 강제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포로로 잡혀있던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은 수용소 내에서 음악인 몇 명을 만납니다.

그들은 각각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주자이었습니다.

수용소 관계자의 도움으로 종이와 연필을 얻어 ‘삼중주’를 작곡합니다.

이후 ‘삼중주’는 올리비에 메시앙 자신의 피아노를 포함한 ‘사중주’로 바뀌어 완성됩니다.

1941년 1월 15일 비가 내리는 포로수용소 안에서 ‘사중주’가 초연되었습니다.

‘사중주’의 제목은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Quatuor pour la fin du temps)]이었습니다.

가톨릭 신자였던 올리비에 메시앙은 악보를 발간하면서 서문에 이렇게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기독교 신약) 요한계시록 10장 1-2, 5-7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올리비에 메시앙이 사중주로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편성을 썼습니다.

보통 사중주는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현악 사중주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의 피아노 사중주가 일반적입니다.

올리비에 메시앙이 사중주의 악기를 변칙적으로 배치한 이유는, 당시 만날 수 있는 연주자가 그들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주자가 그때, 그곳에 없었다면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다른 곡이 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올리비에 메시앙은 이날의 모습을 ‘가장 관객의 몰입도가 높았던 공연’이라 회고했습니다.


곡이 연주되었을 때 주변 광경은 어떠했을까?

수용소 담벼락에 반사되는 소리는 어떤 울림이었을까?

포로를 감시하던 수용소 관계자들은 이 곡을 어떻게 들었을까?

소감을 밝힌 올리비에 메시앙 말고 연주자 세 명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날 내린 비는 어떤 비이었을까?

곡이 끝나고 연주자들은 박수를 받았을까?

관객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무채색의 조각난 선율, 비연속성, 분절. 집중해서 들었다 했는데 흐름을 놓치기 일쑤이었고,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낯선 분위기도 집중을 방해했습니다.

어제와 오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들으며 지냈습니다.

내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다음 클래식 백과, 구스타프 말러

Music And The Holocaust, Olivier Messia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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