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음악 경험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

과거

by 초록 라디오

1.

프랑스 7월 혁명 10주년을 기념해 1840년 프랑스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는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Grande symphonie funebre et triomphale)]을 발표합니다.

대규모 관악대 편성의 교향곡으로 첫 번째 연주를 프랑스 군악대가 담당했습니다.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의 초연은 재앙이었다.
베를리오즈는 10주년 기념행사에 뒷걸음질 치며 마주 오는 200여 명의 군악대를 지휘했다.
하지만 주변 소음 탓에 음악이 잘 전달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3악장 무렵 예기치 못한 작은북 행렬을 만나면서 음악이 묻혀버리고 연주가 엉망으로 끝나고 말았다.’
(출처: [Grande symphonie funebre et triomphale])


바그너(Richard Wagner)는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프랑스 국가가 존재하는 한 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할 것이다.”

베를리오즈의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는 들어볼 만한 곡입니다.



2.

베를리오즈의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 첫인상은 락을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귀에 잘 들어오고, 힘이 넘치는 음악이었습니다.

27분이 지루할 새가 없습니다.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의 느낌은 특별했습니다.


한참 락을 듣던 시절이라 다른 음악에 배타적이었습니다.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은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클래식은 지금도 어려운 상대고 좀처럼 간격이 좁혀지지 않습니다.

베를리오즈는 처음부터 왠지 모르게 친숙했습니다.

이후 전기를 찾아 읽어도 보았고,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도 만나보았습니다.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만큼 와 닿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이 프랑스혁명과 연관된 곡이라는 점이 관심을 끌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혁명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와 혁명의 결과를 의미하는 ‘장송’과 ‘승리’ 역시 흥미를 유발했을 것입니다.


프랑스 7월 혁명 10주년 기념식에 맞춰 작곡이 완료되고 대중에게 공개됩니다.

그러나 초연은 실패로 끝납니다.

베를리오즈는 2년 뒤 1842년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을 다시 무대에 올렸습니다.

공연을 본 바그너가 베를리오즈에 대해 호평하고, 이를 계기로 둘은 친분을 쌓게 됩니다.

베를리오즈는 재미있는 인물입니다.

우여곡절이 많은 만큼 음악사에 의미 있는 흔적도 남겼습니다.

표제음악(Program Music, 標題音樂)이라고 하는 음악 형식을 정립시켰으며, 엄숙주의에 반한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기존 음악의 틀을 깨고자 했던 작곡가로 평가받습니다.

음악 이론가로도 유명해 관련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베를리오즈는 재미있는 음악가입니다.

피아노를 안치는 작곡가, 베를리오즈가 그랬답니다.




(참고자료)

[Grande symphonie funebre et triomphale], Berlioz

Biography, Berli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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