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음악 경험

나비 4

‘하얀나비’

by 초록 라디오

호접지몽(胡蝶之夢)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덧없는 인생, 왜 그리 집착을 하는지
너, 나비야?
나, 나, 내가 나비야.
내가 나비라고.
왜? 나비 하고 싶어.
왜, 왜, 왜?
내가 나비야.


김정호는 ‘하얀나비’를 불렀습니다.

‘하얀나비’는 호접지몽(胡蝶之夢)에 가장 가까운 노래일 수 있습니다.

어쩌다 마주칠 뿐 그는 보잘것없이 한 마리 나비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날갯짓은 가랑비에도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비는 점점 퇴화해 존재마저 희미해졌습니다.

그렇게 잊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떠나버립니다.


‘하얀나비’ 속 나비는 여태껏 임을 찾아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꽃잎은 시들어도 슬퍼하지 말라고 합니다.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라고도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인걸.

아등바등 무슨 소용 있냐고.

그러고선 그는 조용히 떠나갔습니다.


그의 운명은 나비가 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나와 재량껏 날아보지만, 무채색 나비는 운명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색으로 몸통을 장식할 주변머리도 없었습니다.

이름만 나비일 뿐 그는 잊힌 존재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다 갔습니다.

무채색으로 태어나 무채색으로 떠났습니다.

호접지몽에서 나비는 색을 갖지 않습니다.

흰 창호지에 검은 묵으로 감지덕지합니다.

색을 띠고 싶걸랑 호접지몽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 욕심, 출세 모두 각자의 색이 있습니다.

출세를 위해서, 부를 위해서 그 색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호접지몽에 색이 들면 나비의 존재는 사라집니다.

글에서 사상에서 마음에서 나비는 길을 집을 쉼터를 잃습니다.


욕심은 부질없습니다.

부질없음은 일반적이지 못합니다.

일반적이지 못함은 색을 내포합니다.

호접지몽에서 나비는 무채색이어야 존재가 확인됩니다.

무채색은 밤의 배경입니다.

밤은 쉼을 뜻합니다.

밤은 준비를 의미합니다.

밤은 내일을 맞이합니다.

밤은 도약의 밑거름입니다.

밤은 뜨거움을 식힙니다.

밤은 밝음의 다름입니다.

밤은 해의 뒷모습입니다.

밤은 달을 바탕으로 합니다.

밤은 흑백입니다.

밤은 색을 죄다 흡수합니다.

밤은 무채색입니다.

밤은 잠이 채웁니다.

밤은 큰 형입니다.

밤은 갖지 않습니다.

밤은 내줍니다.

밤은 매일 찾아옵니다.

밤은 나비입니다.

나비는 밤입니다.

나비는 준비를 의미합니다.

나비는 내일을 맞이합니다.

나비는 도약의 밑거름입니다.

나비는 큰 형입니다.

나비는 매일 찾아옵니다.

왔다가 매일 떠납니다.


그런 게 인생인걸.

아등바등 무슨 소용 있겠냐만.

조용히 떠난 ‘하얀나비’의 김정호.

그렇게 떠나고 이름도 잊혔습니다.

그야말로 실낱같은 추억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태어나기를 그런 운명이었기에 그는, 우리는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얀나비’는 흰 창호지 위에서 여전히 날갯짓을 합니다.

바람 한 점 내지 못했고 땀 한 방울 날리지 못했지만 ‘하얀나비’의 묵향은 묵직합니다.

보잘것없는 한 마리의 나비, 보잘것없는 무명의 음악인, 무채색에 무채색을.

떠난 그의, 남긴 그의, 듣는 그의, 퍼덕이는 그의, 검고 흰 그의, 그의 이야기.

그의 노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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