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음악 경험

나비 6

‘열흘 나비’

by 초록 라디오

호접지몽(胡蝶之夢)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덧없는 인생, 왜 그리 집착을 하는지
너, 나비야?
나, 나, 내가 나비야.
내가 나비라고.
왜? 나비 하고 싶어.
왜, 왜, 왜?
내가 나비야.


포크 음악인 김두수의 ‘열흘 나비’는 호접지몽을 형상화했습니다.

2007년 5집 [열흘 나비]에 실려 있습니다.

읊조리는 김두수의 목소리에 곡의 분위기가 오묘합니다.

미망의 이승 녘, 너풀거리고 부지(不知) 불명(不明) 불가해(不可解)하며 허공이라고 합니다.

벙거지를 뒤집어쓴 김두수는 통기타와 하모니카로 나비의 세상을 노래합니다.

한 평 남짓한 공간 속 나비는 시작과 동시에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여기서 나비는 희망이 아닙니다.

여기서 나비는 허망입니다.

여기서 나비는 절망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비는 부지입니다.

여기서 나비는 불명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나비는 불가해한 존재도 됩니다.

여기서 나비는 호접몽 그 자체입니다.


김두수는 나비를 냉정한 시각으로 봅니다.

김두수에게 나비는 현실이었습니다.

김두수의 나비는 우리의 나비입니다.

김두수한테 나비는 아픈 손가락입니다.

김두수처럼 나비는 갈 곳을 찾지 못합니다.

김두수로 나비는 업을 떨쳐버립니다.

김두수가 나비의 짐을 대신 집니다.

김두수도 나비도 매한가지입니다.


너풀너풀 나비가 납니다.

하지만 공간이 좁습니다.

세 번 날갯짓으로 끝입니다.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그게 그겁니다.

김두수는 ‘열흘 나비’ 끝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무정처(無定處).


그가 내놓은 나비의 앞날입니다.

정해진 곳이 없습니다.

나비의 시작은 미약했으며 끝도 정처 없습니다.

김두수가 내뱉는 설움에 나비가 화답합니다.

무정처(無定處).


‘열흘 나비’는 희망을, 꿈을, 빛을, 패기를 품지 않습니다.

‘열흘 나비’에서 희망을, 꿈을, 빛을, 패기를 찾기는 어불성설입니다.

‘열흘 나비’가 희망을, 꿈을, 빛을, 패기를 앗아갑니다.


통기타와 하모니카로 나비의 생명은 단축됩니다.

김두수는 나비를 노래하며 나비를 쫓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나비의 의지가 꺾입니다.

‘열흘 나비’에서 나비는 못다 핀 생명을 대신합니다.

결국, 나비는 그렇게 사라집니다.

아마도 웃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꽃 피는 것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햇볕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좁은 공간 속 나비, 박제된 나비, ‘열흘 나비’에서 나비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며 나자마자 시들어버린 존재입니다.

미물로 태어나 미물로 떠나는 가여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김두수의 나비에서 우울한 천성입니다.

호접지몽, 김두수의 나비에서 찾으면 됩니다.

왜 김두수의 나비가 가엽냐고 한다면, 그렇게 보이니 그렇다고 말할 뿐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 걸 어찌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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