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terfly’
호접지몽(胡蝶之夢)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덧없는 인생, 왜 그리 집착을 하는지
너, 나비야?
나, 나, 내가 나비야.
내가 나비라고.
왜? 나비 하고 싶어.
왜, 왜, 왜?
내가 나비야.
미국 하드락 밴드 위저(Weezer)에게 나비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원형입니다.
이들의 1996년 2집 [Pinkerton] 마지막 곡으로 실려 있는 ‘Butterfly’.
어제 잡아 놓은 나비가 오늘 아침 죽어있더랍니다.
해치려 한 게 아니었다고.
나비 냄새가 채 가시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거듭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말입니다.
어릴 적 한 번쯤 겪는 생명의 부침, 성장통을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나비를 만나 즐거웠는데 불현듯 나비를 떠나보내야 한답니다.
내가 나비에게 잘못한 것이 아닐까?
내가 나비를 죽인 것일까?
나 때문인가?
떠나는 건 무슨 뜻이란 말인가?
나와 나비는 무슨 관계이었던 것인가?
나비는 내 친구였을까?
나비가 떠난 건 내 탓인가?
내 손에 있던 그 나비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저기 널브러져 있는 흰색 곤충이 어제 그 나비란 말인가?
저 보잘것없는 군상이 어제 나와 함께 놀던 그 친구란 말인가?
나는 이렇게 멀쩡한데 왜 저 친구는?
나는 뭐고 저 나비는 뭔가?
내가 나비고 나비가 나였던 어제 일은 실재했던 것일까?
꿈이었나?
방안을 기분 좋게 감싸던 향내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와 함께 사라진 것일까?
지금 나오는 노래가 왜 이다지 슬프단 말인가?
밴드 위저의 ‘Butterfly’는 소곤소곤 상황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전말을 밝힙니다.
누군가는 밴드 위저의 최고의 곡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감정의 변화도 화면의 움직임도 소리의 울림도 ‘Butterfly’ 안에서 숨을 고릅니다.
나비와 소년, 소년과 집, 집과 나비, 두루 살펴 노래합니다.
때마침 집 밖이 눈으로 하얗게 변했습니다.
눈에 소리가 묻혀버립니다.
나비 잃은 소년이 울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아마도 울컥했던 것 같습니다.
밴드 위저의 ‘Butterfly’는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
친구였던 나비,
소유로 나비,
망자가 된 나비,
친구였던 소년,
상주가 된 소년.
나중에 소년이 어른이 되면 이렇게 얘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호접지몽.
그런 게 인생인 걸.
밴드 위저의 2집 [Pinkerton], 시간이 없으면 ‘Butterfly’에 잠시 시간을 투자해보지 않겠습니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