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크눌프 5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by 초록 라디오

1. 주인공 크눌프 (3)


어깨가 초라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와 말을 섞습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압니다.

그의 고갯짓이 이전과 다른 의미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감탄합니다.

이 역시 놀라움과 거리가 있다는 점을 압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올수록 크눌프는 뒷걸음치며 떠날 준비를 합니다.

크눌프는 자기가 누군가보다 못한 인물임을 깨닫습니다.

과거에 얽매이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게 옳다는 걸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는 크눌프에게 생각할 시간을 줍니다.

이제 유유자적, 시간은 누군가의 편입니다.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기다림이 크눌프를 옥죕니다.

결국, 힘에 부친 크눌프는 회피하고자 합니다.

크눌프는 기약도, 편지도 없이 누군가라는 현실에서 몸을 감춥니다.

크눌프는 현실에게 사라집니다.

친구도, 친척도, 연인도 현실의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떠올리지 않습니다.

크눌프는 사라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현실은 크눌프를 잊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하는지, 결국에는 어떤 얼굴을 했는지 잊고 맙니다.


뜬금없이 나타났던 크눌프는 뜬금없이 사라집니다.

현실에서 잊힌 존재가 된 크눌프가 향한 곳은 본인이 태어나 자랐던 고향이었습니다.

거기서 어릴 적 친구를 만납니다.

친구는 추억으로 그를 대합니다.

그리고 과거를 소환합니다.

크눌프의 과거가 되살아납니다.

그가 사랑했던 친구 누나, 어떤 일이 펼쳐졌는지, 그의 인생이 어찌 바뀌었고, 크눌프라는 꼬마가 어떻게 변하고 성장했는지 소상하게 털어놓습니다.

크눌프의 유유자적 떠돌이 인생 계기가 여기서 밝혀집니다.

동정의 대상으로 비칠 때가 있고 무책임한 허무주의 모습을 띠기도 합니다.

깨달음의 순간이란 ‘이렇게 괴롭고 벅찬 거야’ 혼잣말로 상황을 꾸미기도 하며 뭉게뭉게 피어나는 잿빛 안개로 미래와 아귀를 맞추는 연역적 행위를 합니다.